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에 국회로 되돌아온 방송4법·25만 원 지원금법·노란봉투법 등 6개 법안이 26일 본회의에서 모두 부결됐다. 방송4법과 노란봉투법은 21대 국회에 이어 두 번째 폐기다. 더불어민주당은 곧장 6개 법안 재발의를 못 박고, 대통령 거부권 남발을 규탄했다.
이날 본회의는 여당 추천 국가인권위원 선출안이 야당의 반대로 부결되면서 한때 난장판이 됐지만, 딥페이크 처벌 강화 법안 등 70여 건 민생 법안을 통과시키며 겨우 체면을 차렸다.
이날 재표결 끝에 폐기된 법안은 6개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골자로 한 방송4법과 하청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고 파업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한 노란봉투법, 전 국민에게 25만~35만 원의 지역사랑상품권을 지급하는 민생회복지원금법이다. 대통령이 거부한 이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려면 200명 의원의 동의가 필요한데, 여당의 반대로 결국 부결됐다.
야당은 곧장 6개 법안 재발의를 공언했다. '야당의 법안 단독 통과→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재표결 여당 반대' 과정을 통해 법안이 폐기되는 "바보들의 행진"이 또다시 반복되는 셈이다.
야당은 이날 민생을 거론하며 여당을 압박했다. "민생 개혁법안"(박찬대 원내대표)이라며 여당 의원들의 동참을 촉구했지만, 국민의힘은 "언론 자유를 위협하고 경제를 무너뜨리는 악법을 막는 게 민생"(한동훈 대표)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당은 법안 통과 때도 장장 7박 9일의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로 결사 반대에 나섰었다.
법안이 끝내 폐기됐지만, 민주당은 손해 볼 게 없다는 판단이다. 거부권을 무더기로 남발하는 윤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를 부각시킬 수 있고, 여권을 향해서도 김건희특검법과 채상병특검법, 지역화폐법에 대한 압박 수위를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박찬대 원내대표가 이날 "채 해병, 김건희 특검법은 정의를 세우는 시금석이며 지역화폐법은 민생회복의 마중물"이라며 "대통령이 다시 거부하면 국민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 경고한 것도 거부권 저지의 '빌드업'으로 볼 수 있다.
민주당은 대통령이 3개 법안에 대해 또다시 거부권을 행사하면 다음 달 4일 재표결을 벼르고 있다. 김건희·채 상병 쌍특검을 정기국회 내내 끌고 가는 게 여론전에서도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윤 대통령이 3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 취임 이후 24번째가 된다.
이날 여당 추천 한석훈 국가인권위원 선출안을 민주당이 부결시킨 것 역시 대통령의 거부권 카드에 대응하는 '기선제압' 성격이 짙다. "윤석열 정권의 부적절한 문제적 인사를 바로잡기 위한 경고장 차원"(박성준 원내수석부대표)이라며 힘 과시에 나섰다는 얘기다.
이날 본회의에서는 싸움만 있었던 건 아니다. 여야는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소지, 시청만 해도 처벌하는 딥페이크 처벌 강화 법안을 비롯해 육아휴직 3년, 배우자 출산휴가를 20일로 늘리는 내용의 일가정양립지원법, 양육비선지급 법안 등 70여 건의 민생 법안을 통과시켰다. 22대 국회 개원 이후 여야 합의로 민생 법안을 처리하는 것은 간호법 제정안·전세사기특별법 처리 이후 한 달여 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