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품연구원이 홍보관에 몰래 암호화폐 채굴장을 운영한 사실이 드러난 직원을 1년 가까이 징계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직원은 그사이 승진도 했다. 식품연은 법정 기한 내에 처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내부에서는 봐주기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27일 식품연이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식품연은 해당 직원 A씨의 행태를 지난해 10월 말 파악했는데, 지금까지 징계위원회를 소집하지 않았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감사위원회가 A씨를 해임하라는 내용이 담긴 처분요구서를 지난달 22일 보냈으나, 한 달이 넘도록 위원 선정 단계에 머물러 있다.
식품연 내부에서 문제의 채굴을 인지한 것은 1년 전인 지난해 10월이다. 불법 우회접속 경로가 있다는 정황을 조사하다 채굴장을 확인한 식품연은 채굴에 쓰인 기기들을 곧장 압수했다. 같은 달 A씨를 채굴과 우회접속의 용의자로 추정하긴 했지만, 8개월 뒤인 올 5월 29일에야 상위기관인 NST에 감사를 요청했다.
감사 결과 A씨는 코로나19 대유행과 장비 이상 등의 이유로 운영되지 않던 홍보관 내 창고에 2022년 기관 예산으로 암호화폐 채굴용 서버를 구축하고 지난해 2~9월 NEXA 코인 7,100만 개를 채굴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울러 다른 직원 B씨가 주요 연구 자료를 빼돌리는 데 원인을 제공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감사 요청이 늦어진 데 대해 식품연 측은 "A씨가 관련 문서를 위조해 제출하는 바람에 사실 확인이 지연됐고, 섣불리 문제를 제기하면 A씨가 증거를 인멸할 가능성이 있어 확실한 증거를 잡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감사 요청 전 A씨에 대한 내부 신고도 접수됐고, 우회접속에 사용된 개인용 컴퓨터가 적발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사이 A씨는 실장으로 승진했다.
'일망타진'을 위해 치밀하게 증거를 확보했다던 식품연은 감사 이후 정작 처분에는 소극적이었다. NST에 감사를 요청하고도 2개월이나 지난 7월 22일에야 A씨를 보직에서 해임했다. 이후 NST 감사위원회가 8월 20일 A씨를 형사고발하고 이틀 뒤 식품연에 처분요구서를 보냈는데, 식품연은 닷새 뒤인 8월 27일에야 A씨를 대기발령 조치했다. 이후 징계위원회까지 계속 늦어지면서 A씨는 꼬박꼬박 월급을 받고 있다. 식품연 관계자는 "신종 범죄라 어느 정도 수위로 징계할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해명을 내놓았다.
하지만 식품연 안팎에선 이미 명백한 증거가 확보됐음에도 처분이 늦어지는 데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식품연 내부에서는 경영진이 A씨 해임을 고의로 지연시키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황 의원은 "비위 행위에 대한 단호한 처분은 물론, 즉각적인 조치가 이뤄지도록 징계와 감사 규정을 정비해야 구성원들의 자부심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식품연은 법정 기한 내에 징계위를 열겠단 입장이다. 식품연 관계자는 "처분요구서에 명시된 피해 금액은 800만 원 수준이지만, 징계위를 통해 3배까지 물릴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