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하면 서핑만 아는 당신, 구경꾼이군요"...한국 도시들을 '방방곡꼭' 걸어본다

입력
2024.09.27 13:30
11면
난다의 우리 도시 이야기 '방방곡꼭' 시리즈
강원 양양군·경기 파주시 거쳐 부산 영도로
사진·지도 없이 글로 마주하는 한국 도시들

출판사 난다의 새로운 책 시리즈 ‘방방곡꼭’은 “방방(坊坊) 뛰고 곡곡(曲曲) 걸으며 꼭꼭 눌러쓴 우리 도시 이야기”(오은 시인)다. 출발점으로 낙점된 도시는 강원 양양군(‘양양에는 혼자 가길 권합니다’)과 경기 파주시(‘파주가 아니었다면 하지 못했을 말들’).

도시를 이해하도록 돕는 사진이나 지도 한 장 없이 글뿐인 책이다. 방방곡꼭의 책임 편집자 김민정 난다 대표는 한국일보에 “오직 글로 부딪히기로 했다”고 전했다. 골방에서 유튜브만 켜도 초고화질 영상으로 직접 가보는 것보다 더 자세하게 타지를 접할 수 있는 시대에 “군더더기 없이 단순한 데서 천진함에 점 딱 찍고 시작하는 시리즈”라는 게 김 대표 설명이다.

“고향 양양군에 바치는 극진한 제물”

“서울보다 땅이 더 크지만 한국전쟁 이후론 삼만 명 이상 살아본 적 없는 곳”인 양양군을 함께 걷자고 청하는 이는 소설가 이경자다. “양양이라고 하면 시들한 표정을 짓다가도 낙산사가 있는 곳이라고 하면 좀 알겠다는 표정이 되곤” 하는 사람들로부터 소외감을 느끼던 양양군 출신 ‘시골뜨기’ 이 작가는 서울에서 소설가가 되어 여러 문학상을 탔다. 문학상 못지않게 재경양양군민회에서 준 제1회 자랑스런 양양군민상을 받은 게 자랑스럽다는 그가 ‘양양에는 혼자 가길 권합니다’를 쓴 건 당연한 귀결이다.

이 작가는 양양군이 끝나고 강릉시가 시작되는 경계인 ‘지경리’에서부터 ‘남애리’ ‘포매리’ 등 도시의 어느 한구석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다. 넓고 깊고 아득한 양양군을 혼자서 이 잡듯 골목골목 돌아다녔다는 그는 “이 책이 양양의 백과사전은 될 수 없으되 이곳을 고향으로 둔 소녀가 소설가로 돌아와 고향에 바치는 극진한 제물(祭物)임은 분명하다고, 감히 고백”한다.

양양군을 ‘서핑의 고장’으로 접한 많은 이들에게 1948년생인 이 작가의 시선으로 본 도시는 생경할지 모른다. 그러나 “서핑은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며 받는 긴장이나 압박이 심한 직업을 가진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파도를 타다 보면 그 모든 시름이 걷히기 때문”이라는 서핑을 위해 지역을 찾은 청년의 말은 “양양의 해안선은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든 생명 존재를 풀어준다”는 이 작가의 말과 닿는다.

선량한 이웃 없이도 평범하게 아름다운 파주

“파주의 무엇이 그토록 매혹적이었을까? 유독 청량한 대기, 빼어난 경관 그리고 눈에 띄게 여유롭고 선량한 이웃들…같은 것은 실재하지 않는다.”

방방곡꼭 시리즈의 두 번째 책 ‘파주가 아니었다면 하지 못했을 말들’에서 시인 부부 김상혁 김잔디는 이렇게 말한다. 함께 사는 강아지 ‘살구’를 위해 파주시로 이사한 부부는 자녀 ‘문채’와 고양이들과 산다. ‘사슴벌레로’ ‘안개초길’ ‘풍뎅이길’ 등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길과 운정건강공원, 임진각 평화누리, 대형 아웃렛을 오가는 가족의 삶은 주변 이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가족의 삶에는 눈을 뗄 수 없는 구석이 있다. 마당에서 발견한 청개구리를 위해 차를 몰아 공릉천으로 향하면서 “개구리야, 우리가 꼭 좋은 자리 찾아줄게, 조금만 참아”라고 말하는 아내, 자신도 모르게 “어어 그래야지, 데려다주고 말고”라고 말을 보태는 남편, 그리고 누구에게나 인사하기를 좋아하는 아이. 파주에는 유기견 ‘빽구’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도 있다지만 이 녀석을 설득해 같이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이웃이 더 많다.” 그것만으로도 “평범하게 아름다운” 파주로 뛰어가고 싶어진다.

양양과 파주를 거쳐 다음은 어디로 갈까. 시리즈의 후속작은 부산 영도구. 필자는 ‘모집'한다. 이달 27일부터 부산 영도구 씨씨윗북 북스토어에서 글쓰기 강연을 듣고 지역 호텔에 묵으면서 도시에 대해 쓰게 하는 “독자로 떠나왔다 청자로 들어봤다 저자로 떠나가는” 기획을 통해서다.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결국은 구경꾼”(‘양양에는 혼자 가길 권합니다’)이라서다. 독자를 구경꾼에 머무르지 않게 하겠다는 게 첫발을 '꾹꾹' 내딛은 시리즈의 각오다.

전혼잎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