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주도하는 RAA 군사협정

입력
2024.09.27 04:30
27면
동남아·오세아니아

편집자주

우리가 사는 지구촌 곳곳의 다양한 ‘알쓸신잡’ 정보를 각 대륙 전문가들이 전달한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일본이 타 국가와 체결하고 있는 '상호접근협정(Reciprocal Access Agreement, RAA)'이 주목받고 있다. RAA는 상대방 국가의 군대가 자국을 방문할 때 입국 절차를 간소하게 해주는 협정이다. 일본은 2022년 1월 호주, 2023년 1월 영국, 2024년 7월 필리핀과 RAA를 체결하였다. 프랑스와도 유사한 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협상 중이다.

일국의 군대가 타국을 방문하려면 비자, 세관, 군수 식량 검역, 무기 반입 등에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다. 군인이 타국 영토에서 중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어느 쪽이 재판 관할권을 가질지도 논란거리다. 매번 훈련 때마다 반복하여 협상하기보다는, 협상을 통해 절차를 간소화하고 명문화한 뒤 지속해서 적용하는 것이 RAA이다. 일본이 체결하고 있는 RAA가 주목받는 이유는 역내에서 양자와 다자 군사훈련의 수가 늘고 참여 병력과 장비도 점증적으로 대규모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과 호주의 협상은 10년 이상을 끌었다. 쟁점 사항은 일본 법원이 일본 영토에서 중범죄를 저지른 호주 군인에 사형을 선고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호주는 폐지하였지만, 일본은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형제 논란 이외에도 정부 기관 간 정책협의도 난항을 겪었다. 하지만 일본과 호주가 RAA를 타결한 후에는 이것이 선례가 되어서 일본과 영국, 일본과 필리핀의 RAA 체결 협상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국도 역내에서 실시 중인 다양한 군사훈련에 참여하고 있는데, 그 빈도와 규모가 늘고 있다. '글로벌 중추 국가'와 'G7+ 국가'를 지향하면서 한반도를 넘어 역내 안보에 좀 더 적극적으로 기여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이에 더해 방산 수출이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군사 무기를 구매했거나 구매를 고려하고 있는 국가와의 군사훈련은 상호 신뢰를 구축하는 매개가 된다. 군사훈련을 계기로 상대국을 방문해 우리 무기의 우수성을 시연할 기회도 가질 수 있다. 2023년에 다자 형태로 개최된 호주와 미국의 '탈리스만 세이버' 훈련에서 우리 군은 호주 영토에서 호주에 판매한 K-9 자주포의 실시간 사격 훈련을 수행하였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한국과 일본은 미국과 '미군 주둔협정(SOFA)'을 체결하고 있다. 필리핀은 미국과 호주와 '방문군대협정(Visiting Forces Agreement, VFA)'을 체결하고 있다. SOFA나 VFA와 달리 RAA는 명칭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상호적' 협정으로 상대국 군대의 입국 절차를 간소하게 하는 대칭적 행정 협정이다. 호주, 필리핀 등 우리와 RAA 체결에 관심이 높은 국가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박재적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