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 일 남은 미국 대선 레이스가 결국 팽팽한 인종 정체성 대결로 치닫는 분위기다. 아시아계 흑인 여성으로 미국의 첫 주요 정당(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원치 않았던 구도다.
24일(현지시간) 결과가 공개된 미국 CNN방송 여론조사에서 백인은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편이었다. 남성 지지율(트럼프 58% 대 해리스 35%)은 압도적이었고, 여성(트럼프 50% 대 해리스 47%)마저 트럼프가 우세했다.
반면 비(非)백인은 해리스에게로 기울었다. 흑인(79% 대 16%)은 물론, 히스패닉(59% 대 40%)도 유색인종 후보에게 더 큰 기대를 걸었다.
아시아계 유권자도 결집하는 양상이다. 아시아·하와이 원주민·태평양 제도 주민(AANHPI) 유권자 단체 ‘APIA 보트(vote)’가 시카고대 여론연구센터(NORC)와 함께 이달 초 벌인 조사 결과에 따르면 66%의 지지를 받은 해리스가 트럼프(28%)를 눌렀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민주당 후보였던 올 상반기(4, 5월) 조사 때는 ‘바이든 46%, 트럼프 31%’였다. 민주당 후보가 교체되며 격차가 15%포인트에서 38%포인트로 벌어진 것이다.
결과는 박빙 접전이다. 전국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CNN 조사에서 해리스와 트럼프의 지지율은 각각 48%, 47%였다. 같은 날 발표된 미국 퀴니피액대 조사에서는 트럼프 48%, 해리스 47%였다. 딱 뒤집힌 결과다. 조현동 주미국 한국대사는 이날 워싱턴특파원 대상 간담회에서 “특별한 돌출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막판까지 우열을 가늠하기 어려운 승부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해리스로선 예상은 했어도 바라지는 않았던 상황이다. 애초 해리스는 정체성 대신 전문성과 정당성을 내세웠다. 우열과 선악이 나뉘기를 희망했기 때문이다. ‘전직 검사 대 형사 기소 4건의 중범죄자’, ‘자유 대 구속’, ‘미래 대 과거’ 등이 그가 유권자 뇌리에 심으려 했던 틀이다.
트럼프는 해리스의 뜻이 관철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20세기 들어 미국에선 다양한 이민자 집단이 생기고 유권자 사이에 ‘인종 투표’ 성향도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를 활용해 자기편을 동원하거나 경쟁 상대의 정체성에 물을 타는 전략이 구사되곤 했는데, 7월 말 전미흑인언론인협회(NABJ) 초청 토론에서 트럼프가 해리스를 ‘출세를 위해 흑인인 척하는 인도계’로 매도한 수법이 전형적이다. 지난달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학계의 표현을 인용해 트럼프의 이런 수사법을 ‘타자화(Othering)’라고 소개했다.
더욱이 여성 정체성은 아예 해리스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도 있다. NYT는 리더십을 남성성과 동일시하는 가부장적 흑인 남성들이 지도자 자리에 도전하는 흑인 여성을 주저앉힐 수 있다고 보도했다. 흑인 남성을 잡아들인 여성 검사라는 일부 인식도 득표의 장애물이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대선 격전지인 조지아주(州) 흑인 남성의 ‘표심’을 잡을 수 있느냐가 해리스 승리의 관건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꺼렸던 인종 정체성 부각을 해리스가 ‘울며 겨자 먹기’처럼 해야 할 형편이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