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동물 떼죽음’, 다른 결론.. 과학이 가리킨 진실은 [동물 과학수사 연구소 ⑤]

입력
2024.09.27 08:00
부검으로 돌아본 동물학대 사건

편집자주

동물학대 범죄에 대한 사회의 관심은 여느 때보다 높습니다. 그러나 2022년 경찰청,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검찰에 송치되는 사건은 55.7%에 그치고, 그나마 송치된다 하더라도 법정에 기소될 확률은 31.9%에 그칩니다. 불송치, 불기소 사유 대부분은 ‘증거 불충분’.
동물은 말을 할 수 없어서 피해를 구체적으로 증언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학대당한 동물 상당수는 이미 숨을 거둔 뒤이기에, 증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과학수사’가 더 필요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동물 과학수사’는 이제 시작 단계입니다. 그래서 동그람이는 지금까지 동물 부검이 범행을 입증하는데 성공하고 또 실패한 사례를 탐색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를 통해 동물학대 수사에 무엇이 필요한지, 앞으로 어떻게 동물 부검 체계가 나아가야 할지 우리 사회가 고민할 기회가 되기 바랍니다.


혹시, 이런 사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가분들을 알고 계실까요? 참.. 처음 보는 사건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네요.

지난 2020년 6월. 취재차 연락한 서울 마포경찰서 수사팀 관계자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의 말에는 정말로 전문가를 알아봐 달라는 뜻과, 수사가 그만큼 잘 풀리지 않는다는 답답함이 반씩 섞인 듯했다.

그는 당시 마포구 경의선 숲길 일대에서 발생한 의문의 조류 떼죽음 사건을 맡고 있었다. 당시 경의선 숲길에는 비둘기와 참새 등 조류 약 100마리가 한꺼번에 목숨을 잃는 사건으로 발칵 뒤집혔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새들을 죽이지 않고서야 이런 일이 벌어질 수는 없다고 모두가 생각했다.

그러나 심증으로 사건을 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수사기관은 누가, 어떻게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를 명백한 증거를 찾아내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곳이다. 마포경찰서는 사체를 수습해 농림축산검역본부 조류질병과에 분석을 의뢰했다. 당시에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예측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수사관 입장에서는 분석 결과 어떤 것도 검출되지 않는다면 다른 전문가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수사 방향을 다시 세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이 수사관의 걱정은 기우에 그쳤다. 확보한 조류 사체에서 농약의 일종인 메소밀(Methomyl)이 검출된 것이다. 메소밀은 무색무취인데다 강한 독성을 갖고 있는 탓에 2012년 유통이 중단된 물질이다. 그럼에도 이미 유통된 제품들은 회수할 수 없는 까닭에 단종된 이후에도 한동안 사용되고 있었다. 심지어 이번 사건이 발생하기 5년 전인 2015년에는 경북 김천시에서 노인 6명이 메소밀이 담긴 사이다를 마시고 중태에 빠진 사건도 있었다.

누군가 인위적으로 메소밀을 새들에게 주지 않고서야 이렇게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목숨을 잃을 리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경찰은 인근 지역 CCTV와 탐문수사를 통해 범인의 덜미를 잡았다. 당시 69세였던 A씨는 경찰 진술에서 “새똥에 맞아 화가 났다”고 진술했다.

독극물로 인한 동물학대 사건은 반드시 진상을 파악하고, 범인을 잡아내 엄벌해야 한다. 그러나 진상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섣부른 판단이 개입하면 오히려 사건 해결에 어려움이 있다는 교훈을 준 사례도 있다.

지난 3월, 전남 완도군에서 발생한 사건이 그랬다. 이 지역에 있는 길고양이 급식소에서 고양이 36마리가 갑자기 목숨을 잃은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이후 독극물에 의한 의도적인 학대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고양이들이 목숨을 잃으며 코에서 출혈 흔적이 보이거나 구토를 한 사례들이 목격된 까닭이었다. 이런 의심의 목소리를 담은 방송 뉴스가 저녁 시간 전국에 송출되면서 일은 더욱 커졌다.

당시에 높은 곳에서 관심 갖고 지켜본다는 소리가 전달될 정도였어요. 언제쯤 결과가 나오겠냐는 문의도 빗발쳤죠.
이경현 농림축산검역본부 수의연구관

결과를 채근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검역본부 질병진단과도 쉴 새 없이 검사를 진행해야 했다. 부검뿐 아니라 가능한 모든 검사는 다 실시해야 했다. 그러나 고양이들의 사체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초기의 의심과는 다른 가능성들이 눈에 들어왔다.


보통 독극물을 통해 동물을 죽이면 동물의 소화기관에 먹을 게 남는 게 일반적입니다. 위 내용물에서 사료나 먹거리, 이상한 물질이 있다고 하면 채취해서 검사를 맡기는데 이 사건과 관련해서는 그런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경현 농림축산검역본부 수의연구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관은 채취한 샘플을 약독물검사실과 바이러스검사실로 보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해서였다. 검사 결과는 예상과 정 반대였다. 범백혈구 감소증. 고양이 파보 바이러스(Feline Pavovirus·FPV)에 의해 감염되는 고양이의 전염성 질병으로 알려져 있다.

야외에서 살아가는 고양이가 어떤 경로로 FPV에 감염됐는지는 알기 어렵다. 다만 분명한 건, 범백으로 인해 자연환경에서 집단으로 목숨을 잃는 고양잇과 동물 사례는 흔하다는 점이다.

샘플에서 확실한 결과를 확인했음에도 이 연구관은 검사를 멈추지 않았다. 아예 경찰에 보낼 수 있는 모든 사체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이목이 쏠린 사건인 만큼 논란의 여지를 남기지 않으려는 이유였다. 추가 검사를 진행했음에도 결과는 모두 같았다. 오히려 대장균성 폐렴이라는 전염성 질병만 추가로 발견됐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진실을 밝혔지만, 돌아오는 건 많지 않았다. 경찰을 통해 진상이 발표됐지만, 떠들썩한 최초 보도에 비해 추가 보도는 단신에 그쳤다. 되려 검사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한 시민들의 민원 전화만 빗발쳤다. 일부 시민들은 이 연구관을 비롯한 검시관들의 전문성까지 의심했다.


사실 이런 사례가 처음은 아녜요. 이제는 좀 익숙하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저희 팀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연구관은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조금 마음고생이 심했어요. 산책 좀 하면서 마음 좀 달래라고 하고 제가 대신 전화 응대를 했죠.
이경현 농림축산검역본부 수의연구관

지역사회에도 상처만 남았다. 지역신문에서는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 뒤 일부 주민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그들은 “주민들끼리 서로를 동물 학대범으로 의심하는 시간이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사건이 정리된 뒤, 이 연구관은 완도군 관계자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비슷한 사건 예방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소독하세요.”


동물단체에서 선의를 가지고 길고양이 먹이를 주는 걸 말릴 순 없어요. 심지어 이 사례는 지자체와 단체가 서로 협력해서 만든 급식소였거든요. 그런데, 분명한 건 고양이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장소가 생길수록 한번 전염성 질병이 발생하면 여러 마리에게 퍼질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에요. 심지어 FPV는 소독 한번 한다고 잘 죽는 바이러스도 아녜요. 그러니 자주 소독하고, 가급적 여러 마리가 한 장소에 모이지 않도록 해야겠죠.
이경현 농림축산검역본부 수의연구관

물론 처음에는 누구나 의심할 수 있다. 사건을 초기에는 일반인이 아니라 전문가라 할지라도 정황상 독극물 가능성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판단 권한을 가진 사람이라면 의심 정황을 섣불리 말하기보다 확실한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다른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과학이 가리키는 사실은 결국은 하나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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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8leonardo8@naver.com
*자료제공 = 농림축산검역본부 질병진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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