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시기 인민군과 좌익세력 등에 의해 전남 신안 주민들이 희생된 사실이 공식 인정됐다. 25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전날 열린 제87차 위원회에서 '전남 신안군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 한국전쟁 발발 후인 1950년 9월부터 10월까지 전남 신안군 자은면에 거주하던 주민 104명이 희생됐다. 1950년 7월 인민군이 목포를 점령하자 자은면 경찰들은 부산으로 피란을 떠났고 좌익세력이 인민위원회를 조직했다. 이들은 마을 지주 등 부유한 주민이나 경찰, 공무원, 우익인사와 가족들을 마을 창고에 구금한 뒤 남진 앞바다로 끌고 가 수장했다.
진실화해위는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공식 사과, 피해 회복과 추모사업 지원 등 후속 조치, 가족관계등록부 등 공식기록 정정 등을 국가에 권고하고 북한 정권에 사과를 촉구했다. 아울러 1950년 9~12월 전남 여수, 구례, 순천 등 8개 지역 기독교인 28명이 우익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희생된 사건에 대해서도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한국전쟁 당시 전남 지역에서 우익세력의 비극만 있었던 건 아니다. 신안군 지도읍을 수복한 국군과 경찰이 좌익 혐의를 받는 주민 46명을 희생한 사건 역시 앞서 지난 2월 진실규명 결정이 나왔다.
이처럼 좌우 세력이 서로를 적대시한 건 전남 지역의 국군 수복이 늦었기 때문이다. 1950년 9월 유엔군이 서울을 수복하며 북한 인민군은 퇴각하기 시작했는데 전남 지역은 1951년 3월에서야 인민군이 완전히 물러났다. 뒤늦게 퇴각하던 인민군과 지방 좌익세력은 우익 인사와 그 가족을 살해해 후환을 없애고자 했고, 이후 우익세력이 다시 승기를 잡자 보복전이 벌어지며 민간인 희생이 반복됐다.
이 같은 보복의 악순환에 2006년 전남 영암군 구림마을엔 '용서와 화해의 위령탑'이 설립되기도 했다. 이념 구분 없이 희생자 모두를 추모하고 화해하자는 취지를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