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사장을 일본어 '사쵸'라 부르고 ②연주 못해도 인기...수상한 밴드 'QWER'

입력
2024.09.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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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콘텐츠 제작자 김계란이 지난해 만든 밴드 
스트리머, 틱토커, 일본 걸그룹 출신 등 4명 멤버 
라이브 악기 연주 못하는 실력 부족 논란에도
팬쇼케이스 매진·새 앨범 신곡 멜론 핫100 진입


수상한 밴드가 요즘 가요계 화제다. 밴드라지만 통상의 록 밴드들보다는 아이돌 걸그룹에 가깝다. 가요계와 연관 있는 기획사 출신도 아니고 심지어 기획자는 운동 관련 콘텐츠 제작자다. 그런데도 데뷔하자마자 팬덤이 생겼고 최근 열린 팬쇼케이스는 30초 만에 입장권이 매진됐다. 팬들만큼이나 '안티'도 적지 않다. 소수의 열성 팬들에게만 인기 있는 그룹인가 싶지만 대중적인 히트곡도 있다. 수상한 걸밴드, QWER 이야기다.

온라인 시대가 낳은 틈새시장 K팝 스타

지난해 10월 데뷔한 4인조 QWER은 유튜버 김계란이 제작했다. 온라인 연재 콘텐츠인 걸밴드 결성 프로젝트를 통해서다. 스트리머 출신인 마젠타와 쵸단, 틱토커 히나, 일본 걸그룹 NMB48 출신 시연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지난해 7월 결성 후 3개월 만에 데뷔 싱글을 발표했고 올해 4월 첫 번째 미니앨범 타이틀 곡 ‘고민중독’으로 멜론 일간차트 4위까지 올랐다. 이 곡은 5개월이 지난 지금도 상위권에 올라 있다. 여세를 몰아 이달 23일 두 번째 앨범 ‘알고리즘스 블러섬(Algorithm’s Blossom)’을 발표했는데, 멜론의 실시간 차트인 ‘핫100’(24일 오후 4시 기준)에 ‘내 이름은 맑음’(9위)을 비롯해 6곡이나 올랐다.

QWER의 인기는 대중문화 산업에서 유튜브, 틱톡, 트위치 등 온라인 콘텐츠의 막강한 영향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밴드 멤버 중 3명이 트위치와 틱톡에서 스타였기에 쉽게 팬덤을 형성할 수 있었다. 결성 과정부터 상식을 뒤집었다. 실력을 갖춘 연주자들이 알음알음 만나 밴드를 결성하는 것과 정반대로 밴드 결성 후 악기를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드럼을 연주해 대학 실용음악과에 진학한 쵸단을 제외하면 세 멤버 모두 초보 수준이다. 핸드싱크(미리 녹음된 음원에 연주하는 시늉만 하는 것)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멤버들도 자신들의 연주로만 무대에 설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쵸단은 “우리 음악에 워낙 백킹 트랙(반주)이 많아 전주 라인만 치는 것”이라며 “백킹 트랙과 섞이면 잘 안 들릴 수 있지만 핸드싱크는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서브컬처 인기 타고 순항 중이나 오래갈지는 미지수

팬들을 사로잡는 건 악기에 서툴렀던 멤버들이 연습과 무대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이다. 마젠타와 쵸단은 “매일 일정을 소화하고 나서도 합주와 연습을 하다 보면 밤을 새우고 다른 일정을 가는 경우도 많았다”며 “밤에 연습하다 그만두고 싶을 땐 옛 영상들을 하나하나 보면서 ‘또 이렇게 하고 싶어?’라고 자문하며 스스로를 다졌다”고 말했다.

QWER의 인기 배경엔 일본 서브컬처(비주류 문화) 영향도 있다. 프로젝트 자체가 일본 만화∙애니메이션 ‘최애의 아이’에서 유래했고 음악도 일본 애니메이션 음악에서 영향을 받았다. 멤버들은 김계란을 ‘사쵸(사장을 뜻하는 일본어)’로 부른다.

K팝의 틈새시장을 공략해 단기간에 성공을 거뒀지만 밴드로서 실력이 부족한 데다 음악적 역량도 한계가 있어 반짝 스타가 될 여지는 있다.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는 “가속도가 붙어 당분간 인기가 이어지겠지만 지나치게 계산적이고 공식화된 음악을 반복하면 오래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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