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두 국가론' 수용 주장에 대해 "반(反)헌법적 발상"이라고 작심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통일 정책을 비판하는 동시에 지난달 광복절 기념사에서 윤 대통령이 밝힌 '8·15 통일 독트린'의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통일'이라는 논쟁적 이슈에 윤 대통령이 직접 가세하며 정쟁을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24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평생을 통일운동에 매진하면서 통일이 인생의 목표인 것처럼 이야기하던 많은 사람이 북한이 두 국가론을 주장하자 자신들의 주장을 급선회했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헌법이 명령한 자유민주주의 평화통일 추진 의무를 저버리는 반헌법적 발상"이라고 지적하고 "북한이 핵 공격도 불사하겠다며 적대적 두 국가론을 주장하는 상황에서 평화적 두 국가론이 과연 가능하기나 한 얘기냐"고 반문했다.
이들 두고 정치권에선 평생 '통일운동'을 정체성으로 삼았던 임 전 실장의 '변심'과 함께 문 정부의 대북정책을 싸잡아 비판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핵심 지지층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북한과 통일 이슈를 부각시켜 여론 결집에 나선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앞서 임 전 실장은 지난 19일 '9·19 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현시점에서 통일 논의는 비현실적"이라며 "통일, 하지 맙시다"라고 주장했다. "객관적 현실을 받아들이고, 평화적 두 개의 국가론을 수용하자"는 의견이었다. 대통령실과 여권에서 '북한 정권의 뜻에 동조하는 의견'이라는 비판에도 적극 반박했다. 23일 페이스북에서 "이상에서 현실로 전환하자"며 "윤석열 정부야말로 김정은 위원장의 '적대적 두 국가'에 정확하게 동조하고 있다"며 맞받아쳤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윤 대통령이 (통일을 주장하다가 통일을 하지 말자고 언급한) 임 전 실장의 논리적 허점을 파고든 것"이라고 평가했다.
여권에서는 이날도 공세를 이어갔다. 윤석열 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을 지낸 권영세 의원은 YTN 라디오에서 "최근 김정은이 '통일하지 말고 적대적 두 국가로 생존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니까 똑같은 이야기를 임 전 실장이 했다"고 꼬집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전날 "동북공정도 아니고 종북공정 하자는 얘기"라고 말했고, 장동혁 최고위원 역시 "국민들 염장 그만 지르시고 북한 가서 살라"고 비판했다.
대북과 통일 관련 전문가들은 현 정부와 직전 정부 간 헐뜯기 양상으로 번지고 있는 상황에 우려를 제기한다. 더불어 윤 대통령이 ‘8·15 통일 독트린’에 대한 지지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통일의 길을 존중하며 차분히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김성경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남북관계가 갈수록 위험해지는 상황에서 양쪽(윤 대통령과 임 전 실장이)이 실체 없는 허수아비를 서로 때리고 있는 모습”이라고 짚었다. 또 다른 대북전문가는 “정부의 방향이 무조건 옳다는 식의 접근도 걱정되는 대목”이라며 “통일 문제에 대한 논쟁의 불을 지피기보다 정부가 대범하고 포용적인 자세로 다양한 의견 수렴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