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숨어만 있었던 것 같고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했어요. 이제는 조금 제 속이야기를 잘 나눌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어서 (심리상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룹 샤이니 멤버인 고(故) 종현(사망 당시 27세)의 누나 김소담씨는 최근 재단법인 ‘빛이나’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처음 자신을 소개하는 영상을 올렸다. 종현이 세상을 떠난 지 7년 만이다. 소담씨가 용기를 낸 건 재단이 최근 시작한 청년 문화예술인을 위한 심리상담 프로젝트 ‘청춘믿UP’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동생을 우울증으로 떠나보냈지만 다른 청년예술인들의 정신건강을 지켜주기 위한 활동이다. 그는 “혼자서 끙끙 앓았던 이야기들이 여러분에게도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혼자 힘든) 시간에 갇혀 있지 말고 우리 같이 이겨내 보는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종현의 가족은 종현의 자살 이듬해인 2018년 그의 유작 앨범의 타이틀곡 ‘빛이 나’에서 이름을 딴 비영리 공익 재단을 설립했다. 재단은 가족의 출연금과 종현의 저작권 수입 등으로 청소년·청년 문화예술인을 위한 장학사업과 활동 무대 등을 지원해왔다. 예술인 심리상담 지원센터를 짓는 것은 다음 목표다.
‘구하라법’(민법 개정안)이 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데는 가수 고(故) 구하라(사망 당시 28세) 가족의 힘이 컸다. 2019년 구하라가 자살하자 20년 넘게 연락조차 하지 않았던 친모가 거액의 유산을 받게 됐다. 구하라의 오빠 구호인씨는 부모가 양육하지 않은 자녀의 재산을 상속받지 못하게 하는 민법 개정에 앞장섰고, 5년 만인 지난달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호인씨는 “'구하라법'이 앞으로 발생할 피해자들을 많이 구하길 바란다”는 감사 인사를 남겼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누구보다 큰 아픔을 느꼈을 (자살) 유가족들이 개인적인 상실로 끝내지 않고 유사한 아픔을 겪을 수 있는 이들을 위로하고 또 다른 피해를 막고 있다”며 “연예인 사망 후 연예인 가족에겐 사회적 영향력과 발언권이 생기는데, 이걸 그냥 넘기지 않고 공익을 위해 활용한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의료사고로 사망한 가수 신해철(당시 46세)의 배우자도 2016년 ‘신해철법’(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서 의결하는 데 힘을 보탰다. 2009년 위암으로 사망한 배우 장진영(사망 당시 37세)의 아버지인 고 장길남씨도 이듬해 계암장학회를 설립해 꾸준히 장학 사업을 했다.
가족들의 이런 활동은 연예인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된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아이돌 등 연예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없지 않은데, 가족의 공익 활동이 관점을 전환시켜준다"며 "유명인의 유족이 재단 설립, 기부 등을 통해 사회에 공헌하는 문화가 정착된 해외처럼 한국에서도 이런 흐름이 지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시트콤 '프렌즈'로 세계적인 사랑을 받은 배우 매튜 페리(당시 54세)가 지난해 약물 중독으로 사망하자 유족들은 중독치료 재단을 만들어 고인의 유산을 기부했다. 매튜 페리는 30년 동안 약물 중독 치료를 받았다.
유족들의 이런 애도 방식은 치유 효과도 크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여전히 죽음이나 자살을 감추려는 분위기가 있지만 유족들의 사회적 활동으로 떠난 사람을 오랫동안 기억하는 것은 유족뿐 아니라 (유명인의 죽음으로 상처 받은) 대중의 치유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