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뉴스이용자위원회는 11일 서울 중구 컨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데이터저널리즘 평가회의를 열었다. 표·그래프·사진 등을 이용해 정보를 가시화하는 인포그래픽, 이용자와 상호작용하는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평가했다. 회의에는 외부위원 6명과 사내위원인 김희원 뉴스스탠다드실장 외에 이진희 논설위원과 김주성 디지털이노베이션부문장이 참석했고, 김경희 위원장과 강민구 위원은 서면으로 의견을 냈다.
권혜진 위원은 국제 데이터저널리즘 상인 시그마 어워드에 국내 언론 중 처음 본선 후보에 올랐던 2020년 '한반도 소리없는 '위성전쟁'' 이래 인터랙티브 콘텐츠의 성과를 짚으며 "지난 5년간 한국일보는 다양한 포맷을 시도하는 혁신과 성장으로 '국내 최고 인터랙티브'라 할 만했다"고 총평했다. 그러나 "요즘은 '왜 이렇게 망했지'라는 생각이 든다. 혁신성이 떨어지고 기획자의 빈자리가 보인다. 그나마 7월 이후론 한 건도 없다"며 우려를 표했다. 그는 "팀작업은 만들어내긴 어렵지만 사라지는 건 한순간이다. 성과 계승을 위한 적극적 지원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최신 인터랙티브 'RE100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7월 19일)는 추락의 대표적 사례였다. 우선 "이것만 봐서는 RE100이 왜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인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하상응 위원)고 할 정도로 완결성이 부족했고, "스크롤하면 그래프와 텍스트가 중첩돼 읽기가 불편"(유혜정 위원)해 본연의 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평이었다. 장민제 위원은 "인터랙티브에 적합한 콘텐츠였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경제섹션을 중심으로 복잡한 정보를 위트 있게 담은 인포그래픽은 호평을 받았다. '미 빅컷에 한도 금리 인하 기대, 문제는 부동산'(9월 20일 자)에 삽입된 한·미 금리차 추이 그래프, '청년 ‘연금 불만’ 달래기… 보험료 16년간 천천히 인상'(9월 5일 자) 기사의 국민연금 연령별 차등 인상안 그래프 등은 복잡한 내용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게끔 표현됐다. 온라인 기사에도 인포그래픽을 빠짐없이 넣어달라는 주문이 덧붙여졌다.
그러나 인포그래픽이 정보를 정확하고 명료하게 전달하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정명화 위원은 미국 남녀의 뉴스소비 방식에 대한 ‘미국 남녀의 엇갈린 선택, 남성은 X·여성은 페이스북’(9월 25일 자)이 "제목과 그래픽이 서로 달라 의아했다"고 말했다. 그래픽에선 남성이 가장 많이 보는 경로가 레딧이었고 X는 있지도 않은데 제목은 기사를 토대로 X를 언급해 혼란을 낳았다. 여성이 가장 많이 보는 경로 또한 기사에선 틱톡, 그래픽에선 페이스북, 제목은 페이스북으로 맞지 않았다. 조사 데이터를 임의로 발췌해 그래픽을 제작하면서 빚어진 오류였다.
‘임대료는 동결, 적자는 눈덩이, 속만 타는 ‘LH’’(10월 2일 자) 기사에 삽입된 일러스트도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는 지적이었다. 정명화 위원은 "기사에선 LH 적자의 원인으로 임대료 책정이 물가를 반영하지 못하는 점, 정부의 부실한 대응을 들고 있는데 이미지만 보면 임대아파트 존재가 LH 재정 악화를 야기하는 것 같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정부기관도 못 지워···네이버·X ‘불법 개인정보’ 판친다'(9월 21일 자) 속 개인정보 불법유통 게시물 현황 그래프에 대해 "2024년 그래프가 꺾여 불법유통 게시물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는데 8월까지의 통계만 반영됐기 때문"이라며 "기사 의도를 정확히 반영하려면 2023년 수치까지만 담거나 2024년 말 추정치를 계산해 담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인포그래픽에 정보 출처가 없거나 부정확한 것도 문제로 꼽혔다. 정지훈 위원은 '"교권 침해 심각" 78%..."학부모 내 자녀 중심주의 때문" 가장 많아'(9월 12일 자)에 대해 "그래프에 자료의 출처가 없는데 독자들이 신뢰할지 의문이다. 조사 기관과 대상, 표본수를 추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AI, 업무 생산성에 긍정적” 64%···보안 이슈 등 기술 활용 부작용 우려도 커'(9월 28일 자)에 대해 "대형 그래픽이 기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면서도 '한국리서치, 20-64세 남녀 취업자 조사’라는 출처가 없었던 점을 지적했다. 하 위원은 'RE100은 왜…'가 "단 하나의 자료를 인용해 만든 인터랙티브였는데 임의로 선택한 자료라는 의심을 살 수 있다. 또 이 자료가 보고서인지 학술지인지 정확한 설명이 있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래픽을 제작한 기자의 바이라인도 꼭 기재하라는 주문이었다. 권 위원은 "지면에는 '그래픽=OOO 기자' 표기가 없는 경우가 많다"며 "바이라인을 넣는 것이 그래픽 뉴스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신뢰도를 높여준다"고 했다.
민감한 데이터 그래프에는 Y축과 0점을 생략하지 말라는 당부도 있었다. 권 위원은 "한국일보는 타사보다 Y축과 0점이 생략된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기울기가 왜곡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막대그래프는 Y축 기준선을 0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명시한 'AP스타일북' 가이드라인을 소개했다. 또한 "Y축 눈금선이 있어야 숫자 비교가 수월하다"고 덧붙였다.
정보를 직관적으로 보는 가시화 면에서도 개선할 점들이 많았다. 장 위원은 중동 분쟁 기사에 인포그래픽을 활용한 것을 칭찬하면서도 가독성이 아쉽다고 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1년'(10월 8일 자)과 '이스라엘 다층 방공망'(10월 3일 자) 등이 "지면에 실린 그래픽 크기는 작은데 디테일과 정보량은 너무 많아서 시선이 분산되고 해석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며 "복잡한 이미지는 공간을 크게 확보하거나 정보량을 덜어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반면 아동의 의료적 자기결정권을 다룬 '“아동, 보호자 동의 없이도 치료받아야” 66%... 의료적 자기결정권 필요 시사'(9월 21일 자)의 인포그래픽은 정보량은 적은데 큰 공간을 차지했다는 의견이 나왔다.
정지훈 위원은 '지구촌 신망 잃어가는 유엔의 현주소'(9월 11일 자)에 담긴 국가별 국제연합 호감도 그래프를 비호감도 내림차순으로 재정렬해 비교하면서 "이렇게 정리됐다면 유엔 선호도가 낮은 국가와 높은 국가를 한눈에 파악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구분하기 힘든 배색도 가시화를 저해했다. 유 위원은 '전기차 화재 대책 주요 내용'(9월 7일 자)을 들며 "어두운 파란색 위 검은색 등 비슷해 보이는 배색은 정보 전달을 방해한다"고 말했다. 권 위원은 "색상을 선택할 땐 색맹, 색약자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테스트가 필수"라면서 색맹 테스트 툴을 이용하기를 권했다. 강 위원은 그래픽 글자 크기(폰트)가 너무 다양해 보기 불편하다고 했다.
정지훈 위원은 "9월 7일부터 10월 4일까지의 정치 일반 기사 104건 중 인포그래픽이 활용된 기사는 단 2건뿐"이라며 정치기사에 인포그래픽 활용을 늘릴 것을 제안했다. 그는 "정치뉴스가 그래픽을 활용할 것이 많지는 않지만 경제기사 '영풍-고려아연 분쟁 일지'(9월 19일 자)처럼 복잡한 사건의 흐름을 정리한 표나 인물관계도 등 인포그래픽이 많아지면 독자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헤즈볼라 지도부 사망 정보 그래픽(9월 30일 자)의 경우 "사망한 지도자 얼굴사진에 X표를 한 것은 전쟁을 게임처럼 보이게 할 뿐 아니라 이스라엘 시각이어서 이슬람 이주민 입장에선 불편했을 것"이라며 유의를 당부했다. 성별 고정관념을 부추기는 이미지와 색상에 대해 개선하라는 의견도 개진됐다. 정명화 위원은 기업의 대표자나 고소득층을 주로 남성으로 표현한 것에 대해 "남성이 여성보다 유능하거나 부유하다는 편견을 고착화할 수 있다"며 여러 성별로 표현할 것을 권했다. 권 위원은 남성은 파랑, 여성은 분홍으로 표현한 배우자·자녀 유무에 따른 청년 취업·소득 현황 그래프(9월 11일 자)와 관련해 "해외에선 남녀를 블루·핑크 외 다양한 색상으로 표현하는 추세"라며 "한국일보도 고정관념에서 탈피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용자 환경/사용자 경험(UI/UX)과 관련해서도 "독자를 위한 가이드 표시가 필요하다"(강 위원) "반응형으로 디자인되면 좋겠다"(장 위원) "클릭을 해서 다른 정보로 넘어갔다가 되돌아갈 때 내비게이션이 있으면 효율적일 것"(유 위원) 등 제안이 나왔다.
위원들은 결론적으로 한국일보 매체를 떠올릴 수 있는 일관성 있는 디자인을 위해 비주얼 에디터를 두고 가이드라인을 정립하기를 조언했다. 권 위원은 "외국 언론은 차트만 봐도 이건 파이낸셜 타임스, 이건 월스트리트저널임을 알 수 있다. 한국일보도 고유의 컬러를 반영한 톤앤매너를 정비해야 한다"며 "온오프라인을 종합 주관하는 비주얼 에디터를 두고 비주얼 가이드라인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장 위원도 "색상, 크기 등 스타일에서 한국일보 인포그래픽의 톤앤매너를 확립하고, 통일성 있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기사의 주요 내용을 강조할 때 쓰이는 포인트컬러(분홍색)만 해도 한국일보의 대표 컬러인 연두색보다 강하고 지면은 글자색, 온라인은 음영으로 다르게 적용돼 혼란스럽다는 반응이었다.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전파하기 위해 유통에 신경 쓰라는 제언도 있었다. 하 위원은 "인터랙티브는 대부분 기획기사라 계기만 생기면 언제든 다시 소환될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2년 전 기사도 끌어와 최신 보도에 끼워 넣기도 한다"며 적극적인 반복 노출, 홈페이지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코너 위치를 주문했다.
김주성 부문장은 인터랙티브 생산이 주춤하고 있는 것에 대해 "담당 부서의 과부하, 포털에서 구현되지 않는 점 등이 영향을 끼쳤다. 또 세계적으로 인터랙티브에 대한 사용자의 호응이 낮아져서 새로운 형식을 고민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또 "인터랙티브 코너 노출, 내비게이션 바 등 지적을 반영하겠다"고 답했다.
지난달 좋은 기사로는 '70대 건국우유 노동자 “매일 1만5000원씩 직업소개소에서 떼갔다”, 떼인 임금은 그뿐일까'(9월 28일)가 꼽혔다. 권 위원은 "'중간착취의 지옥도, 그 후' 시리즈로 간접고용 노동자에게 벌어지는 중간 착취 문제를 꾸준히 고발하는 좋은 기사"라며 "대화체의 편안한 기사에 끝까지 읽고 공감하게 된다"고 했다. 특파원 르포기획 '중동 전쟁 1년, 이스라엘을 가다'(10월 7~9일 자)도 인상 깊었다는 평가다. 정지훈 위원은 "중동 전쟁이 장기화되며 전쟁이 가지는 참혹함에 대해서 거리감이 느껴졌는데 현장감 넘치는 기사를 읽고 전쟁이 피부로 체감됐다"고 했다.
삼성전자 기흥사업장 피폭 사건을 보도한 '삼성전자 피폭사건, 안전장치 무력화 시점·인물 못 찾았다... "총체적 관리 부실“'(9월 26일)은 "인포그래픽과 일지까지, 타지보다 훨씬 상세하게 보도했으나 신문지면에서는 볼 수 없어 아쉬웠다"(권 위원)는 의견이었다.
위원들은 또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논란을 한국일보가 외면한 것을 비판했다. 유 위원은 "대회 이후 선발 결과에 대한 기사가 지면에 4건, 온라인에 8건 게재되고 대회의 의미와 내용, 수상자 인터뷰를 다뤘는데, 논란이 됐던 딥페이크 질문에 대한 기사는 한 건도 없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미스코리아 주최는 자회사가 맡았지만 사실상 한국일보 행사로 알려져 있어 딥페이크 논란이 한국일보 신뢰도에도 영향을 끼쳤다"며 "한국일보가 해명과 사과문을 내야 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