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을 구매한 뒤 이를 갤러리에 빌려주면 전시 수익 등을 나눠주겠다고 투자자들을 속여 1,000억 원 가까운 거액을 챙긴 일당이 검찰에 넘겨졌다.
24일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아트테크'를 빙자해 수백억 원대 투자금을 빼돌린 A갤러리 관계자 11명을 사기 및 유사수신행위규제법 위반 혐의로 13일 송치했다고 밝혔다. 총책을 맡은 갤러리 회장, 대표 등 주범 3명은 지난달 29일 먼저 구속 송치됐다. '아트테크'란 아트(예술)와 재테크의 합성어로, 예술품을 구입·소유해 수익을 내는 신종 투자 방식이다.
일당은 투자자들에게 미술품을 구매하게 한 뒤 이를 자신들이 차린 갤러리에 위탁 보관하면 △전시나 임대, 간접광고(PPL) 등을 통해 발생하는 수익으로 매달 1%의 저작권료를 지급하고 △임대 기간이 끝나면 작품의 원금을 보장해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속아 넘어간 피해자는 1,110명에 달하며, 피해 금액은 905억 원 상당으로 추산됐다. 인터넷 광고를 공격적으로 내보내 투자자를 모집한 뒤, 아트테크 등 낯선 용어에 호기심을 느낀 이들이 문의전화를 하면 영업사원을 파견해 1 대 1로 마크하며 투자를 종용했다.
일당은 작가들에게도 거짓말을 했다. '창작지원금'을 줄 테니 작품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시킨 것이다. 이 이미지 파일을 피해자에게 전송해 갤러리가 실제 작품을 보유하고 있는 것처럼 속였다. 미술품 구매와 동시에 갤러리에 위탁 보관되는 형태라 피해자들이 실물을 확인 못 한다는 허점을 이용한 셈이다. 일부 피해자가 실물을 보고 결정하겠다고 하자 작품 몇 점만 갤러리에 옮겨놓기도 했다. 또 작가들에게 한국미술협회가 발행하는 가격확인서를 10배 가까이 부풀린 가격으로 받아 오라고 종용하거나, 임의로 가격 책정이 가능한 '인보이스(수출 시 결제 청구서)'를 발급받은 뒤 공식 가격증명서인 척 피해자에게 내밀기도 했다. 범행 초기엔 작품 1점당 100만 원 선에서 매매됐으나, 나중에 수억 원대로 오르는 등 범행이 점차 대범해졌다.
이들이 투자 사기에 활용한 미술품은 최소 3,000점으로 피해자는 대부분 30, 40대였다. 가장 큰 피해 금액은 16억 원이다. 조사 결과 작가들은 창작지원금을 수령하기 위해 갤러리 측에 사진을 전송했을 뿐, 자신의 작품이 판매되거나 사기에 연루된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으로 파악돼 송치 대상에서 제외됐다. 총책 등은 이렇게 빼돌린 대금을 개인사업 자금이나 명품 소비에 썼다. 경찰은 피의자들의 계좌를 추적해 122억 원 상당의 범죄 수익을 기소 전 몰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