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한국전력 관계자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2021년부터 계속되는 회사의 적자 상황은 예삿일이 돼버렸지만 4분기(10~12월)에는 꼭 이뤄질 것이라 기대했던 전기요금 인상이 안갯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한전은 산업통상자원부의 승인을 받아 4분기 전기요금 구성 항목 중 하나인 연료비조정단가를 현재와 같은 kWh(킬로와트시)당 5원으로 유지한다고 23일 밝혔다. 반면 기본요금, 전력량요금(기준연료비), 기후환경요금 등에 대한 인상 언급은 또 없었다. 결과적으로 4분기 전기요금은 일단 동결됐다. 가정용 전기요금은 2023년 2분기 이후 5개 분기째 꼼짝을 하지 않고 있다.
산업부는 "나머지 항목은 언제든지 조정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 말인즉슨, 언제 요금을 올릴지 정해둔 게 없다는 뜻이 된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올해 초 취임 후 내내 전기요금 얘기만 나오면 '현실화' 또는 '정상화'를 강조하며 요금 인상 의지를 강하게 내비쳐왔다. 8월 열린 기자간담회에선 전기요금 인상 시점과 관련해 "폭염 기간이 지나가면 최대한 시점을 조정해서 정상화하겠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요 며칠 정부와 한전의 움직임을 보면 이 말이 무색해진다.
전기요금을 올린다면 폭염이 지나가고 난방 수요가 커지는 겨울철이 다가오기 전인 지금이 적기다. 하지만 한전엔 또다시 희망고문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미 한전 차원의 자구책은 한계에 다다른 상황에서 마른수건을 쥐어짜며 버티고 있다. 생활물가 잡기, 서민 부담 등 경제 전반을 고려해야 한다는 재정당국의 결정 과정에서 한전의 경영 부실 해소는 늘 뒷전이었다.
전기요금 인상이 물가 상승 요인이 될 순 있다. 다만 총 부채 때문에 부담해야 할 연 이자가 4조 원이 넘는 상황에서 한전의 재무 위기도 국민 부담으로 되돌아오기는 마찬가지다. 6월 말 기준 한전의 연결 기준 총부채는 약 202조 원으로 대규모 부채 탓에 흑자를 내도 총 부채가 늘어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단계적 요금 인상이 필요하다.
안 장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싶다. 그런데 공염불이라는 단어가 스멀스멀 떠오른다. 이는 진심이 없이 입으로만 외는, 헛된 염불. 실천이나 내용이 따르지 않는 주장이나 선전의 비유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