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별과 개밥바라기

입력
2024.09.25 20:30
27면

편집자주

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별 보기 좋은 계절이다. 어수선한 세상일 훌훌 털고 고요히 눈으로 걷기 좋은 가을 하늘이다. 별을 보면 마음도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계수나무 아래에서 방아를 찧는 달나라 옥토끼가 반갑다. 어린왕자가 떠나온 별 소행성 B612도 아스라이 눈에 들어온다. 문득 궁금해진다. 나는 어느 별에서 왔을까.

초저녁 혼자 외로이 뜬 금성을 볼 때면 괜스레 눈물이 찔끔 난다. 개밥바라기. 가난한 이름 때문일 게다. 우리 조상들은 저녁에 뜨는 금성을 개밥바라기라고 불렀다. 배고픈 개가 저녁밥 달라고 짖을 무렵, 서쪽 하늘에 뜨는 별이라서 붙인 이름이란다. 바라기는 음식을 담는 조그마한 사기그릇이다. 그러니까 개밥바라기는 개 밥그릇이다. 빈 바라기를 얼마나 핥아야 별처럼 반짝반짝 빛이 날까. 어둑어둑할 때 서쪽 하늘에 빛나는 금성은 어둠별로도 불린다. 개밥바라기와 어둠별은 국어대사전에도 오른 고운 우리말이다.

새벽 동쪽 하늘에 뜨는 금성은 샛별이다. ‘새+별‘ 구조로 ’새’는 동쪽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그래서 동쪽에서 부는 바람도 샛바람이다. 금성은 한자 이름도 있다. 밝음을 여는 별이란 뜻의 계명성(啟明星)과 새벽에 뜨는 별인 신성(晨星)이다. 튀르키예에선 목동별, 서양에선 미의 여신 이름을 따 비너스(Venus·베누스의 영어 이름)라고 부른다. 정겹고 예쁘다.

간혹 샛별을 ‘새벽별’이라고 부르는 이가 있다. 아쉽게도 새벽별은 표준어가 아니다. 의미가 같은 형태가 몇 가지 있을 경우, 그중 하나가 널리 쓰이면 그 단어만을 표준어로 삼는다는 규정 때문이다.

별과 관련해 하루빨리 버릴 말이 있다. 바로 기라성이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무수한 별이라는 뜻으로, 신분이 높거나 권력·명예 등을 지닌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기라(綺羅:きら)’는 일본어 ‘번쩍이다’는 뜻으로 밤하늘의 별을 상징한다. 여기에 별 성(星) 자를 붙인 게 기라성이다. 일본어의 독음일 뿐, 고운 비단이라는 한자어 뜻과는 거리가 멀다. 그럴싸하게 보이지만 일본어 음만 빌려 만든 엉터리다. 따라서 우리말 내로라하다, 뛰어나다, 두드러지다로 써야 한다.

'삐까번쩍'도 써서는 안 될 말이다. 반짝반짝을 뜻하는 일본어 ‘삐까삐까’에 우리말 번쩍번쩍을 붙여 만들었다. 그런 까닭에 '삐까번쩍'은 결코 빛날 수 없는 말이다. 번쩍번쩍만으로도 충분하다.

별은 어린이의 눈으로 볼 때 가장 아름답다. 순수한 마음으로 올려다보면 밤하늘에서 그리운 얼굴을 만날 수도 있다.





노경아 교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