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건국우유 노동자 “매일 1만5000원씩 직업소개소에서 떼갔다”, 떼인 임금은 그뿐일까

입력
2024.09.28 16:00
[중간착취의 지옥도, 그 후]
<63> 건국우유 공장에서 생긴 일


편집자주

간접고용 노동자는 346만 명(2019년). 계속 늘어나고 있죠. 원청이 정한 직접노무비를 용역업체나 파견업체가 노동자에게 다 주지 않고 착복해도 제재할 수 없어서, 이들은 노동시장에서 가장 낮은 임금을 받습니다. 국회에서 발의됐던 ‘중간착취 방지 법안들’은 제대로 논의도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중간착취 문제를 꾸준히 고발합니다.

올해 3월, 70대의 노동자가 충북 음성노동인권센터 사무실을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는 9개월가량 건국우유 공장에서 상자를 세척하는 일을 했는데, 기본 하루 8시간 일하고 연장근로를 2~4시간 했다고 하죠.

연장근로 시간과 상관없이 일당은 늘 9만5,000원이었다고 합니다. 원래 하청업체에서 주는 일당은 11만 원이라고 들었다고 하니, 매일 1만5,000원을 자신을 공장에 취직시킨 직업소개소에서 떼어간 것이죠. 주휴수당 350만 원, 연차 미사용수당 76만 원도 받지 못한 것으로 계산됐습니다. 근로계약서, 급여명세서조차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성실히 일을 했는데, 하도급 업체 직원과 말다툼이 생겼습니다. 그 직원의 “내일부터 나오지 마”라는 한마디에 바로 해고됐다고 울분을 토했다고 합니다.

아리셀의 그 불법파견이 건국우유에도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 화성의 아리셀 참사 기억하시죠? 간접고용, 특히 불법파견 문제는 사건사고가 발생한 후에야 외부에 알려지고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서울 광진구 건국대 창의관 별관 2층에 본사를 둔 건국유업·건국햄(이하 건국우유)은 1999년 충북 음성군 대풍산업단지에 공장을 설립하고 운영 중인데 이곳이 원청-사내하청-직업소개소로 이어지는 2중의 중간착취 고리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도, 이 70대 노동자가 음성노동인권센터를 찾기 전엔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건국우유는 자동화율이 높은 ‘살균 우유 주입’ 단계에는 원청 노동자를 투입하고, 포장·유통·상자 세척 등 단순 노무 작업 부문은 하청 노동자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최근 5년간만 집계해봐도 1, 2년을 주기로 하청업체를 바꿔가며 같은 일을 시키는데, 현재는 J사가 맡고 있습니다. J사는 서울 영등포구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사실상 인력장사를 하는 아웃소싱 업체입니다.

노동자들이 수년간, 길게는 10년 넘게 일하고 있는데 소속 사내하도급업체는 거의 매년 교체되다보니, 노동자들은 소속 업체 이름이 뭔지조차 헷갈릴 정도라고 합니다. 사실상 원청의 장악이 강하고 하도급업체는 ‘바지사장’에 불과하다는 걸 방증하는 현상이지요.

그런데 J사는 D인력 등 두 곳의 직업소개소와 다시 도급계약을 맺고 일용직 노동자들을 고용했습니다. 도급계약은 ‘일의 완성’에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직업소개소는 이 계약을 맺는 것은 말이 안 되죠. 더구나 직업소개소는 구직자(노동자)에게서 3개월간 1%의 임금만 소개요금(수수료)으로 받을 수 있는데, 노동자들에게서 매일 1만5,000원씩을 떼는 건 엄연한 직업안정법 위반입니다.


알려주고 단속하면 적발될 리가 있나

노령 노동자의 고발로 시작된 건국우유 사건의 결말은 어땠을까요. 직업소개소를 통해 J사에서 일한 2차 하청 노동자 33명은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충주지청 근로감독에서 불법파견이 인정됐습니다. 이 경우 J사가 직고용을 해야 하죠.

그런데 9명만 직접고용 근로계약을 맺었다고 합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불법체류자)가 대부분이라 신원확인도 안 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불법체류 자체를 옹호할 순 없지만, 이들의 취약한 지위를 이용해서 사람장사를 하며 임금을 떼어먹는 중간착취가 만연한 현상을 언제까지 두고 봐야 할까요. 특히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미지급된 주휴수당 등 임금체불 2,100만 원도 확인됐습니다.

J사에서 일한 하청 직원들도 사실상 원청의 지휘·감독을 받았다면 원청인 건국우유 측의 불법파견인데요. 특히 건국우유 원청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우유 생산 공정에도 직업소개소를 통한 불법적인 파견 노동이 있었다는 현장 노동자들의 증언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고용청에서 건국우유와 사내하청 간의 불법파견 부분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지요.

박성우 음성노동인권센터 상임활동가는 “하청 노동자가 해서는 안 되는 분야 일까지 했다는 증언이 있어서 고용부에 조사해달라고 진정서를 넣었지만, 조사를 나간 결과 확인이 안 됐다고 했다”며 “불시 단속을 해야 하는데 조사 갈 거라고 미리 알려주고 조사를 나가기 때문에 적발이 어렵다”고 비판했습니다.

또한 “원청인 건국대 법인이 이 문제에 책임질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 건국대는 하도급 업체와 인력사무소 간에 생긴 문제라며 자기들과는 관계가 없다는 입장”이라고 답답해했지요. 직고용을 피하기 위해 인력장사꾼들에게 하청의 하청을 맡기고, 거기서 발생하는 노동문제는 방관하는 원청의 모습, 한국 사회에선 익숙한 풍경입니다.

중간착취로 얼마 챙기는지 알 수도 없어

J사는 인력공급을 계약한 업체만 24곳에 이르는 아웃소싱 업체입니다. 생산 및 서비스 외주화를 맡는다고 하는데, 말이 좋아 아웃소싱이지 ‘사람 장사’로 이익을 내는 업체지요.

이 사건에서 드러난 중간착취는 일용직 노동자가 직업소개소에 매일 떼인 1만5,000원(추정)인데요, 과연 그것뿐일까요.

원청(건국우유)과 J사 간 도급계약에서 책정된, 즉 원청이 내려보낸 원래 노동자 임금(직접노무비)은 얼마였을까요? J사는 이 중 얼마를 떼고 직업소개소에 내려 보냈을까요? 또 직업소개소는 그 돈 중 얼마를 떼고 일급(9만5,000원)을 줬을까요? 누구는 떼이기 전 원래 일당을 10만 원으로 알고 있고, 누구는 11만 원으로 알고 있는 등 그들이 받아야할 직접노무비를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고용청에서도 이 부분은 제대로 조사가 되지 않았고, 노동자들은 과도하게 떼인 위법한 수수료도 돌려 받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도급 계약서상의 원칙대로라면 ‘이윤’ 항목으로 책정된 금액만 챙기는 것이 원칙이지만, 노동자에게 주도록 되어 있는 노무비까지 일부 착복해도 현행법상 알 수가 없습니다. 직업소개소 수수료 1% 규정을 제외하면, 도급업체의 임금 중간착취는 불법도 아니어서 처벌할 수도 없지요. 간접고용 노동자는 애초 원청이 자신의 임금으로 책정한 액수가 정확히 얼마인지 알 수도 없게 되어 있는 비참한 현실에 놓여 있습니다.

국회에 잠들어 있는 중간착취방지법이 통과되면 이런 부당함을 개선할 수 있지만, 국회의원들은 사회 최하부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원통한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언제까지 이 곪고 곪은 문제를 국회는 외면할까요.


원청업체-사내하도급업체-직업소개소로 이어지는 간접 고용 구조의 모순은 근로기준법에서 강하게 금지하고 있는 ‘중간 착취’를 구조화합니다. 원청이 노동자들을 사내하도급업체를 통해 사용하면서 발생하는 사내하도급업체의 이익분은 노동자들을 중간 착취한 결과입니다. 사내하도급업체가 직업소개소를 통해 일용직 노동자들을 사용하면서 발생하는 직업소개소의 이익분은 일용직 노동자들을 또다시 중간 착취한 결과입니다. 원청업체는 아웃소싱업체와 직업소개소에게 노동자의 권리를 값싸게 팔아 넘기며 지역의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있습니다.
‘건국우유 불법파견/간접고용 철폐를 위한 공동행동’ 발표 자료 중

‘중간착취의 지옥도’바로가기: 수많은 중간착취 사례와 법 개정 필요성을 보도한 기사들을 볼 수 있습니다. 클릭이 되지 않으면 이 주소 www.hankookilbo.com/Collect/2244 로 검색해 주세요.

이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