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과의 만찬 회동을 하루 앞둔 23일 '의정 갈등'에 대한 공개 메시지를 자제했다. 반면 '여야의정 협의체'에 정부를 빼자는 더불어민주당 일각의 구상에는 발끈하며 맞섰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이날 한 대표의 독대 요청을 사실상 거부하면서 당장 의정 갈등의 해법을 도출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의료 공백 문제에 대한 언급을 삼갔다. 대신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11월 1심 선고를 앞둔 이재명 대표를 때리는 데 주력했다. 한 대표는 이 대표를 겨냥해 “조용히 (공직선거법 재판) 결과를 기다리고 불복하지 말라”고 일갈했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국회 권력으로 검찰을 협박하고 사법 시스템을 흔들어도 진실은 가려지지 않는다”고 지적했고, 장동혁 최고위원은 민주당의 검찰 압박 움직임을 겨냥해 “‘아버지 이재명’을 지키기 위한 헌법 농단”이라고 꼬집었다. 의정 갈등에 변곡점이 될 수 있는 당정 만찬을 하루 앞두고 여권 내부의 불필요한 잡음을 줄이기 위해 화살을 야당으로 겨눈 것이다.
다만 비공개 회의에서 한 대표는 여야의정 협의체에서 정부를 배제한 '여야의 협의체'를 띄우자는 민주당 일각의 구상에 대해 "말이 되는 소리냐"고 비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의대 정원 등 결정권을 쥔 정부를 배제한 협의체는 빈껍데기가 될 수밖에 없는 데다, 민주당이 문제 해결보다는 당정 갈등을 부추기는 데 힘을 쏟고 있다는 인식이다. 한지아 수석대변인은 취재진과 만나 “여야는 중재의 역할을 하는 것이고 의료계와 정부가 대화를 해야 하는 것”이라며 민주당의 구상에 선을 그었다.
이처럼 당 지도부는 다음 날 만찬 회동에 기대를 걸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하지만 "꼭 내일 해야만 되는 건 아니다"라는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입장 발표에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독대가 무산되면서 상황이 꼬였다. 한 대표는 앞서 만찬 직전 윤 대통령과의 독대를 요청했다. 20명 넘게 참석하는 만찬 자리에서 의정 갈등 해법을 위한 밀도 있는 논의가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로써 당정 만찬은 △각종 현안에 대한 수박 겉핥기식 언급과 △윤 대통령의 체코 순방 성과 공유 △당정 화합을 다짐하는 건배사 등으로 채워질 공산이 커졌다.
반대로 '협의체에 정부를 빼고 가자'는 야당의 주장이 힘을 받게 됐다. 민주당 의료대란대책특위는 이날 국회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이번 만남이 단순한 보여주기식 식사 자리가 아니라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삶의 질을 높이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는 자리가 되길 촉구한다”며 “실패할 경우 그 책임은 가볍지 않을 것”이라고 압박했다. 박주민 특위 위원장은 “내일 만찬에서 한 대표가 빈손으로 오면 그때는 (정부를 배제한) 여야의 협의체 등에 대해 말씀드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대통령실이 거부해 온 복지부 장차관 경질론을 여당 내에서 다시 거론했다. 국회 보건복지위 간사인 김미애 의원은 YTN라디오에 나와 “정무적으로는 (경질할) 그런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경질 시기에 대해서는 “이쯤되면 (정부가) 반응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24일 만찬에서 경질 문제가 튀어나온다면 당정 관계는 더 꼬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