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계속되던 어느 날 아파트 엘리베이터 벽에 종이 한 장이 붙었다. 인근 초등학교의 비대면 음악 수행평가로 인해 악기 연주 소리가 들릴 수 있으니 양해를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안 그래도 며칠간 리코더와 피아노 등의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리던 차였다. 수행평가 당일에는 여기저기서 제법 큰 악기 연주 소리가 들렸다. 물론 연주라기보다는 소음에 가까웠지만, 그리 싫지 않았던 건 소리의 '주인공'을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각자의 집에서 음악 수행평가에 임하는 초등학생을 떠올리면 그 소리마다 손뼉을 쳐주고 싶어졌다.
격월간 문예지 릿터(6, 7월호)에 실린 소설가 김기태의 '일렉트릭 픽션' 역시 엘리베이터에 붙은 한 장의 종이로부터 시작한다. 내용은 이렇다. '저는 전기 기타를 좋아합니다. 가끔만 집에서 연주합니다. 9시 이후에는 안 하겠습니다. 불편함이 있으시면 505호에 메시지를 남겨 주세요. 죄송합니다.'
"1층의 필로티식 주차장을 빼고 2층부터 6층까지 스물다섯 가구쯤은 살지만 서로 마주치지 않기 위해 문밖의 기척에 귀를 기울이고 다음 엘리베이터를 타는 곳." 도시 풍경에 흔한 빌라촌에 사는 '그'는 에너지 공기업의 한 사무실에서 유일한 계약직으로 일한다. 8년째 재계약을 거듭하며 같은 곳에서 일하지만, 아무도 그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다. 전 직원이 사옥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는 날, 나오지 않고 사무실을 지키더라도 아무도 왜 안 나왔냐고 묻지 않는 존재다.
그날 평소처럼 집으로 돌아온 그는 일렉트릭, 즉 전기 기타를 사기로 결심한다. 스마트 기기용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연주법을 배워가며 치는 기타는 삶의 활력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 '기타 연주하는 분께. 이웃끼리 배려 부탁드립니다. 집에 아기가 있어요'라고 적힌 종이가 붙자 그는 기타를 팔기로 결심한다.
중고 거래 장소인 음악학원에서 구매자로 나선 나이 지긋한 백발의 여성은 그가 그간 기타를 혼자 쳤다는 말에 "음악은 그런 게 아니야"라며 뜻 모를 훈계를 한다. 우여곡절 끝에 기타를 파는 대신 여성에게 레슨을 받기로 하고 집으로 기타를 가지고 돌아온 그는 깨끗한 A4용지 한 장에 안내문을 적어 엘리베이터에 붙인다.
이 소설은 작은 반전을 가지고 있다. 제목처럼 소설의 모든 이야기가 '픽션'이라는 점이다. 실제로는 없는 사건을 상상력으로 재창조한다는 픽션의 의미처럼 소설이 끝나갈 무렵 '그'와 '기타' 사이의 여정은 모두 엘리베이터의 안내문을 보고 이웃인 '나'가 상상해 낸 것들임이 밝혀진다. "익명이 되려고 서로 최선을 다하는 이곳에서 자신이 505호, '여기'에 있다고 고백한 사람. 배려와 무례가 섞인 문장들이 아주 조금 열어놓은 문" 그 문틈으로 엿봤기에 더 이상 익명일 수 없는 이웃이 하나의 사람으로 존재하게 되는 순간. 점점 드물어지는 보통의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