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한국 프로야구는 사상 처음으로 시즌 관중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종전 최다 관중은 2017년 840만 명이다. 6월부터 계속된 무더위와 파리 올림픽 등 악조건도 프로야구 인기를 막지 못했다. 프로야구 중계를 본 누적 시청자도 2억5,000만 명을 넘어섰다.
흥행 성공 원인은 여러 가지다. 팬이 많은 구단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고, 류현진 선수 복귀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젊은 세대 특히 여성 야구팬들이 크게 늘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조사에 따르면, 야구장 방문 후 가장 기억에 남은 장면으로 43.2%가 ‘응원 문화’를 꼽아 1위였고, ‘경기 자체’는 21.4%로 2위에 그쳤다. 프로야구가 단순한 스포츠 경기를 넘어 관객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그래도 프로야구 핵심 흥행 요소는 역시 응원하는 팀의 선전이다. 아무리 인기 구단이라도 몇몇 팀만 잘해서는 1,000만 관중을 동원하기 힘들다. 하위 팀들도 5위까지 진출하는 ‘가을 야구’(포스트시즌) 입성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한다. 키움 히어로즈를 제외하고는 9개 팀이 올해 정규시즌 내내 가을야구를 가시권에 두고 경쟁을 벌였다. 히어로즈도 꾸준히 승률 4할대를 유지하며, 상위 팀에게 뼈아픈 패배를 안기는 ‘고춧가루’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 결과 관중 100만 명을 돌파한 구단이 6개나 됐다. 이 역시 역대 최초다.
하위 팀의 선전, 달리 표현하면 구단 경기력 평준화가 올해 프로야구 흥행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이게 하위 팀 노력만으로 가능할까. KBO와 구단들은 지난 42년 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특정 팀의 장기 독주를 막고, 하위 팀이 도약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했다. 우선, 신인 드래프트 제도다. 각 구단이 아마추어 선수를 영입하는 연례 지명행사로, 2022년부터 전면 드래프트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해 최종 팀 순위의 역순 즉 10위 팀이 제일 먼저 전국의 대상 선수 중 1명을 지명하고 1위는 10번째로 지명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를 통해 하위 팀은 우수 유망주를 선점할 수 있다. 우수 신인을 확보한 하위팀은 유망주를 다듬어 수년 내 상위로 성장할 바탕을 마련한다. 오랜 기간 하위권에 머물다 올해 돌풍을 일으킨 롯데와 한화도 이런 드래프트 제도가 큰 힘이 됐다. 정규리그 1위 기아와 2위 삼성의 부활도 ‘암흑기’에 뽑은 우수 신인의 활약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또 다른 제도는 프리에이전트(FA)다. 일정 기간 한 팀에서 활약해 자유롭게 팀을 선택할 자격을 갖춘 우수 선수를 다른 팀이 영입하려면 원래 팀에 보상금과 보상선수를 내주도록 하는 규정을 만들어, 돈 많은 구단이 우수 선수를 싹쓸이하기 힘들게 한 것이다. 이 두 제도는 든든한 모기업 없이 독자 운영하는 히어로즈가 경기력을 유지하는 힘이다. 우수 신인을 선점해 스타로 육성하고, 그 선수를 고액에 해외 리그나 타 팀에 보내 운영비에 보태고, 이 과정에서 확보한 보상 선수는 즉시 전력으로 활용한다. 히어로즈는 최근 진행된 내년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보상으로 받은 3장의 지명권을 활용해 우수 신인을 대거 확보했다.
이런 ‘억강부약(抑强扶弱)’ 리그 운영이 프로야구 붐을 일군 원동력이다. 물론 프로야구 리그 운영을 곧바로 정치 경제 현실과 연결하는 건 무리다. 하지만 계층, 수도권-비수도권, 대-중소기업, 수출-내수, 정규-비정규직 등 사회 전반에서 격차가 확대되며 활력과 희망이 사라지는 상황이다. 그런데 정부의 대책은 수출, 대기업, 고소득층 등 선도부문 성과가 늘어나면 후발 주자에게도 혜택이 돌아갈 것이란 ‘낙수 효과’에 머물러 있다. 정부가 프로야구 흥행 성공에서 배워야 할 지혜가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