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머리카락 100분의 1 두께로 150도 열기 버텨라"…열 폭주 막을 방정식 푸는 '배터리 분리막'의 세계

입력
2024.09.2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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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게 '배터리 분리막' 개발한 SK IET
대전 R&D센터서 다양한 분리막 실험해 제조
전기차 화재로 배터리 제조사들 요구 다양해
고내열·강도, 셧다운 분리막 등으로 '시장 선도'


100마이크로미터(㎛). 머리카락의 평균 두께다. 얇은 만큼 쉽게 끊기고 불에 가까이 가기만 해도 확 사그라진다. 이런 머리카락의 100분의 1 두께인 '1㎛ 필름'이 존재하고 이 필름이 150도 열기에서도 버티는 리튬이온배터리 분리막이 될 수 있을까. 20년 넘게 배터리 분리막을 개발해 온 SK 아이이테크놀로지(SK IET) 대전 연구개발(R&D)센터에서는 이런 의문을 현실로 만들고 있었다.



막으면서 뚫려야 하는 '분리막'..미세다공성막이 해결


SK이노베이션 자회사인 SK IET의 주요 사업 아이템은 리튬이온배터리 분리막 제조, 판매다. 2003년 관련 연구팀을 출범시킨 후 2004년 국내에서 최초로 분리막 생산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했다. 2007년에는 세계 최초로 5㎛ 박막 제품을 개발해 상업 생산에 성공했다. R&D센터에서 개발한 제품은 국내 12개 생산 라인과 해외 공급망을 통해 전 세계 배터리 제조사에 보내진다.

리튬이온배터리 분리막은 '이차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리튬이온배터리는 전해질을 통해 음극에서 양극으로 이온이 이동하면서 전기 에너지가 생기고 반대로 양극에서 음극으로 이온이 움직이면 충전되는 원리다. 중요한 건 음극과 양극은 무조건 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둘이 만나는 순간 열폭주가 일어나 바로 대형 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와중에 이온은 양극과 음극 사이를 오가야 한다. '막으면서도 뚫려 있어야 하는' 모순을 충족해야 하는 것이다.

SK IET는 '미세다공성막'이라는 필름으로 방정식을 풀어냈다. 이 필름은 이온만 오갈 수 있는 아주 미세한 구멍이 있지만 양극과 음극은 만나지 못하게 막아주는 기능을 지녔다. SK IET는 이 필름을 1998년 만들어 현재까지 끊임없이 발전시키고 있다.



전기차 화재에 다양해진 요구 모두 대응하는 SK IET


오랜 기간 노하우를 다진 SK IET에 '고차 방정식'이 주어졌다. 전기차 화재가 잇따르면서 고객사들이 뜨거운 열기에도 버티고 화재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은 차단하고 외부 충격에도 강한 분리막을 요구하고 있다. 20일 찾은 R&D센터에서는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미니 공장'이 연신 돌아가고 있었다. ①미세다공성막에 다양한 첨가제를 섞어 코팅하고 ②가로·세로 방향으로 늘려 두께를 얇게 하고 ③다양한 온도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끊임없이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과정을 거쳐 SK IET는 최근 △고내열성 분리막 △셧다운(Shut Down) 온도 저감 분리막 등을 개발 완료했다. 고내열성 분리막은 350도의 고열도 버틴다. 셧다운 온도 저감 분리막은 배터리 온도가 특정 수준(130~140도)에 이르면 녹는 첨가제(고분자)가 들어가 있다. 배터리가 정상 온도를 벗어나면 고분자가 녹으면서 이온이 오가는 구멍을 막아 음극과 양극이 만나 열폭주가 일어날 가능성을 막는 것이다.

김진웅 SK IET R&D센터장은 "SK IET R&D센터는 차별화된 기술력으로 제품 개발의 중추 역할을 맡아 다수의 글로벌 고객사를 상대로 공급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대전= 이상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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