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보호한도가 2001년부터 24년째 유지되는 동안 보호되지 않는 예금 규모가 대폭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새마을금고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사태 이후 정치권에서 예금보호한도를 두 배 늘리는 등 관련 법안을 잇따라 내놓고 있지만 정부와 금융권이 난색을 표하고 있어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23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유동수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예금보험공사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은행·저축은행·보험·금융투자업권에서 예금 규모가 5,000만 원을 넘겨 '보호되지 않는' 예금 규모는 올해 3월 기준 1,454조3,000억 원에 달한다. 전체 금융권 예금 규모(2,924조 원)의 절반(49.7%) 수준이 유사시 보호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2014년 692조 원(43.8%) 수준이던 미보호 예금은 2018년 923조 원, 지난해 말엔 1,399조 원으로 늘었다. 올해도 3개월 만에 55조2,000억 원이 불어난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금융 전반의 시스템이 강화하면서 예금자가 금융회사에 맡긴 돈을 잃을 가능성은 낮아졌다. 하지만 지난해 새마을금고 뱅크런 사태처럼 언제든 대규모 인출사태가 금융권에 확산할 경우 금융시스템은 물론 국가 경제에도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
이 때문에 24년째 1인당 원리금 5,000만 원에 묶여 있는 예금보호한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그사이 1인당 국내총생산(GDP)과 예금 규모는 각각 3배, 5배가량 늘었지만 예금보호한도는 유지됐다. 일본 1,000만 엔(약 9,000만 원), 영국 8만5,000파운드(약 1억5,000만 원), 미국 25만 달러(약 3억3,000만 원) 등 해외와 비교해도 우리나라 예금보호한도는 낮은 축에 속한다.
관련 법안도 잇따라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 신영대·엄태영 의원 법안은 한도를 1억 원 이상으로 상향하는 내용을, 같은 당 김한규 의원안은 금융·경제 위기 등 특정 상황에서는 예금 전액을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도 지난해 3월 자산 기준 16위 규모인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한 뒤 도미노 파산을 막기 위해 예금 전액을 보호하는 조치를 취한 바 있다.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는 한도 상향에 신중한 입장이다. 지난해 말 기준 전 금융권 예금자 가운데 5,000만 원 이하가 98%로, 일부 '부자' 계층만 한도 상향의 혜택을 볼 뿐이라는 이유에서다. 또 한도 상향 시 보다 높은 금리를 받기 위해 저축은행 등을 찾는, 자금 쏠림 현상이 나타나 금융불안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이유도 거론된다. 금융사들은 예금보험료를 더 지불해야 한다는 현실적 이유로 예금보호한도 인상에 부정적이다.
그러나 미보호 예금 비중이 클수록 예상치 못한 금융 시스템 위기가 닥칠 경우 피해가 일파만파 커지는 만큼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유 의원은 "미국·영국·일본 등 주요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예금자 보호한도를 상향 조정했다"며 "위험부담의 업권별 형평성이 문제라면 은행의 보호한도는 상향하되 저축은행·상호금융 등의 한도는 유지하는 등 차등 설정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