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녀를 살해한 뒤 베란다에 시멘트로 암매장한 50대 남성이 범행 16년 만에 경찰에 검거됐다. 자칫 장기실종으로 남을 뻔한 사건은 집주인이 누수공사를 진행하면서 덜미가 잡혔다.
경남 거제경찰서는 동거 중이던 여성을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살인)로 A씨를 구속했다고 23일 밝혔다. A씨는 2008년 10월 거제시 한 건물 원룸(옥탑방)에서 동거녀 B(당시 30대)씨와 다투다 둔기로 B씨의 머리와 얼굴을 때려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B씨가 숨지자 시신을 여행용 가방에 넣은 뒤 원룸 옆 야외 베란다로 옮겨 벽돌을 쌓고 시멘트를 부어 숨겼다.
평소 B씨는 가족과 왕래가 거의 없었던 탓에 실종 신고는 2011년에야 이뤄졌다. 뒤늦게 수사에 나선 경찰은 신고 접수 당시 가장 마지막까지 함께 생활했던 A씨를 의심해 참고인 조사를 벌였지만 A씨는 “B씨와 헤어졌다”고 진술했다.
시신도 발견되지 않아 실종·사망·해외도피 등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뒀던 경찰은 실종 후 3년이나 지났던 탓에 폐쇄회로(CC)TV나 통화내역 등 범행을 추정할 만한 증거를 확보할 수 없어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실종사건은 미제로 남았다.
그렇게 묻히는 듯했던 A씨의 범행은 지난달 옥상에 있는 베란다 누수공사로 콘크리트를 부수던 작업자가 시신이 담긴 여행용 가방을 발견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경찰은 외부와 차단돼 완전히 부패하지 않고 비교적 양호하게 보존(시랍화)된 시신에 남아 있던 지문을 채취해 B씨의 신원을 확인했다. 부검 결과 사망 원인은 둔기에 의한 머리 손상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A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하고, 지난 19일 양산에 거주하던 A씨를 체포했다. 조사과정에서 A씨는 “이성 문제로 다투다 살해했다”며 범행을 시인했다. 또 피해자가 사용한 휴대전화와 범행에 사용한 둔기는 거제 앞바다에 버렸다고 진술했다.
범행이 16년 만에 드러난 다른 이유도 있었다. 피해자가 실종됐을 무렵인 2008년에 피해자 가족이 두 사람이 동거한 거제를 방문하기도 했지만, A씨를 만나지 못했고, 집주인에게서 '피해자는 다툰 후 나갔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집주인도 A씨가 암매장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일찍 발견하지 못했다. A씨는 시신을 숨긴 원룸에서 8년을 더 살다 2017년 주거지를 옮겼다. 당시 마약 투약 혐의로 구속돼 시신을 다른 곳으로 옮기지 못했고, 출소 후 짐을 그대로 놔둔 채 거주지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집주인은 A씨의 짐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없어, 다른 세입자도 들이지 않고 내버려 두다 2020년 3월에야 명도소송을 통해 처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다른 곳에 거주하는 집주인은 이 방을 창고처럼 사용했다"며 "세로 70㎝, 가로 39㎝, 높이 29㎝ 크기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설치된 베란다도 옥탑방과 분리된 밖에 있어, 방 안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구조라 바로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은 A씨에게 사체은닉 혐의도 적용하려 했으나 공소시효(7년)가 지나 제외했다. 경찰관계자는 “체포 당시 A씨가 필로폰을 추가로 투약한 혐의도 포착돼 여죄를 확인하고 있다”며 “범행 경위 등 보강 수사를 마무리한 뒤 검찰에 사건을 송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