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직전 터진 '남민전 사건'... 옥중 사망한 이재문 유족에 1.5억 배상 판결

입력
2024.09.23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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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정치범이라며 외부진료 불허
구치소서 제대로 치료 못 받고 사망

박정희 정권 말기 '남조선 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남민전) 사건'으로 수감됐다가 옥사한 이재문씨 유족에게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1심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23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2부(부장 최욱진)는 이씨 자녀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지난달 23일 "총 1억5,000만 원을 배상해야 한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남민전은 반유신 민주화운동, 반제국주의 민족해방운동 등을 목표로 1976년 결성된 지하 조직이다. 1979년 10월부터 공안당국은 서울 시내에 유신 체제를 비판하는 유인물을 배포하는 등의 활동에 국가보안법 혐의를 적용해 80여 명을 검거했다. 유신 말기 최대 공안사건으로, 이재오 전 한나라당 의원과 김남주 시인 등이 당시 투옥됐다.

남민전 중앙위원회 위원이자 서기였던 이씨는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사형이 확정됐다. 그는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1981년 11월 숨졌다. 2022년 8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이씨에게 고문과 가혹행위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고문 때문에 건강이 나빠졌음에도, 당시 국가안전기획부는 이씨가 정치범이라는 이유로 외부 진료를 불허했다고 진실화해위는 밝혔다. 유족들은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4월 소송을 냈다.

이번에 1심 재판부는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서울구치소와 안기부는 외부 병원 치료가 가능하고 인도적 차원에서 수술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음에도 보안상 불가능하다며 소극적 치료만을 시행해 이씨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판단했다. 이어 "사형수라고 해도 형 집행이 되기 전까지는 행복추구권, 생명권 등 헌법상 권리가 보장돼야 하는데, 이씨는 행정적인 편의를 이유로 생명권이라는 가장 중대한 법익을 침해당했다"고 덧붙였다.

국가 측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도 물리쳤다. 재판부는 유족이 진실화해위 결정을 받은 2022년 9월 8일부터 소멸시효를 따져야 하고, 그로부터 3년 이내인 지난해 4월 소송이 접수됐기 때문에 소멸시효가 지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교도소장이 이씨와 가족들의 외부진료 요청을 묵살하고 수형자에 대한 적절한 치료 의무를 게을리했다"면서 "안기부도 수형자의 치료행위에 대해 위법하게 개입해, 국가는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1심 판결 후 정부는 항소했다.

이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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