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즈볼라에 대한 이스라엘의 인식 변화

입력
2024.09.24 04:30
27면
중동

편집자주

우리가 사는 지구촌 곳곳의 다양한 ‘알쓸신잡’ 정보를 각 대륙 전문가들이 전달한다.

올여름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눈에 띈 건 집집마다 있는 대피소였다. 대피소들은 밖에서도 쉽게 열리도록 안에서 문을 잠글 수 없는 구조로 설계돼 있었다. 미사일과 로켓 공격으로부터 늦게 대피하는 가족이나 이웃도 쉽게 들어올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하지만 이 구조는 비극의 원인이 됐다.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 마을을 기습했을 때 하마스 대원들이 대피소 문을 밖에서 열고 들어가 주민들을 살해했다. 대피소에 갇힌 주민들은 공포에 떨며 밖에서 문을 열지 못하도록 안간힘을 써야 했다.

10·7 이후 이스라엘의 안보 인식은 180도 달라졌다. 전쟁 발발 전까지만 해도 미사일과 로켓 공격에 대비해 방어력과 화력을 강화하는 것에 주력했다. 하지만 이제 이스라엘은 국경지대에 무장 세력들이 존재하는 것 자체를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하게 됐다.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와의 군사 긴장을 의도적으로 고조시키는 배경에는 변화된 안보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남부에서 하마스의 무력을 상당 부분 제거한 뒤, 이제는 북부 국경지대에서 헤즈볼라 대원들을 몰아내야 한다는 판단이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헤즈볼라와의 군사 충돌 가능성을 경고해온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레바논 전역에서 헤즈볼라 대원들이 사용하는 무선호출기와 무전기에서 갑작스럽게 경고음이 울리고, 곧이어 폭발이 이어졌다. 이로 인해 헤즈볼라 대원은 물론 민간인까지 큰 피해를 입었다. 이어진 이스라엘 공습으로 헤즈볼라 특수부대 라드완 군의 고위 사령관 아흐마드 와흐비를 포함해 여러 주요 지휘관이 사망했다.

다만, 이스라엘-헤즈볼라 간 군사적 충돌이 이스라엘과 이란의 직접적 군사 대결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 이란은 전쟁에 휘말리길 원치 않는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통한 영향력 확대를 모색하고 있으며, 중국과 러시아와의 협력 강화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한다. 미국도 대선을 앞두고 중동에서의 군사 충돌을 피하려는 입장이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소통보좌관은 외교적 해결이 최선의 방안이며, 전쟁 확산이나 새로운 전선 형성을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

돌발 변수가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지만,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충돌이 주변 국가들의 참전으로 대규모 중동 전쟁으로 번질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불안정한 정세 속에서 이스라엘-헤즈볼라 군사 충돌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지켜볼 일이다.


김강석 한국외대 아랍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