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조 적자 서울교통공사 "전기요금 인하 좀"... 빚 200조 한전 "내 코가 석자"

입력
2024.10.13 19:00
11면
서울교통공사 등 철도운영기관 15곳
"공공서비스인 철도용 요금 신설" 건의
누적 적자 40조 한전 "시설 보수 지원 중"
정부, 해법인 전기·철도 요금 인상은 미뤄

만성 적자에 허덕이는 전국 철도운영 기관들이 최근 한전에 전기요금 부담을 낮춰달라고 건의했지만, 빚이 200조 원대인 한전은 "내 코가 석자"라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정부가 필수 기반시설인 지하철과 전기 이용요금 현실화를 외면하면서, 결과적으로 재정난에 시달리는 공기업 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서울 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를 비롯해 한국철도공사, 인천교통공사 등 전국 15개 철도운영기관은 지난달 한전에 공동 건의문을 전달했다. 현재 적용되는 전력요금제보다 싼 철도용 요금제 신설이 골자다.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의 특성을 감안해 달라는 것이다.

서울교통공사, 지난해 전기요금 첫 2,000억 돌파

지하철 요금 인상은 통제되고 있지만 2022년 이후 전기요금은 6차례에 걸쳐 1㎾h당 총 45.3원 인상(산업용 전력)돼 한계에 다다랐다는 게 철도운영기관 측 설명이다. 지난해 5,713억 원 손실을 비롯, 누적 적자가 18조 원인 서울교통공사의 지난해 전기요금은 2,378억 원으로 전년(1,883억 원)보다 26.3%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력사용량은 고작 0.4%(1,293GWh→1,298GWh) 증가한 데 비해 전기요금 부담이 급격히 가중됐다. 공사는 서울시 한해 전력 사용량(4만4,546GWh)의 2.91%를 쓴다.

발전소에서 거리가 멀수록 요금을 높게 책정하는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화'가 한전 계획대로 2026년 현실화되면, 공사 재정난은 더 악화할 전망이다. 공사관계자는 "지난해엔 운수 수입금(1조4,752억 원)의 16.1%를 전기요금에 썼고, 지난해 5월 및 11월 인상분이 온전히 반영되는 올해 전기요금은 작년보다 191억 원 더 증가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공사는 철도용 요금제 신설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전력은 용도에 따라 주택용·일반용·산업용·농업용 등 다른 요금 체계가 적용되는데 지하철에 사용되는 전력은 산업용으로 분류된다. 산업용은 사용자의 최대 사용량에 따라 전기요금을 부과하고 전기 사용량이 많은 계절·시간대일수록 높은 요금을 책정하기 때문에 부담이 크다.

공공서비스용 전기요금을 신설한 선례도 있다. 1990년대 학교에 냉난방 시설과 교육용 컴퓨터가 보급돼 전기요금 부담이 늘자, 한전은 교육계의 건의를 받아들여 1992년 일반용 전력보다 약 8% 저렴한 교육용 전력 요금을 신설한 바 있다.

연간 이자 비용만 4조 원 한전, 요금제 신설 쉽지 않아

하지만 재정 상황이 녹록지 않은 한전이 이 건의를 수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한전의 부채(연결기준)는 2021년 말 145조7,970억 원에서 2022년 192조8,047억 원으로 급증했고, 지난해엔 202조4,502억 원을 기록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천연가스와 원유 가격이 급등했는데도 전기요금 인상분은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적 적자는 40조 원을 돌파했고 연간 이자비용으로 지출하는 돈만 약 4조 원이나 된다. 한전이 남 사정 봐줄 때가 아니란 얘기다.

설상가상으로 지난달 한전은 올해 4분기(10∼12월) 전기요금을 동결했다. 연말까지 요금인상 여지는 남아있지만, 재정난 해소를 위해 요금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전문가들의 주문을 외면한 것이다. 한전 관계자는 "철도운영기관 건의 내용을 관련 부서들과 면밀하게 검토 중에 있다"면서도 "한전은 (철도운영기관의) 전기 관련 설비 유지·보수 비용에 예산을 투입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한전의 재정 상황상 철도운영기관의 전기요금을 낮춰줄 여력이 전혀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부 공공요금 현실화 미뤄, 부담 떠안은 공기업 간 갈등 야기

근본 해법은 전기 및 지하철 요금 현실화이지만 정부가 이를 억제하는 게 문제다. 서울 지하철은 지난해 요금을 300원 인상해야 하나 시민 부담을 감안해 150원만 인상하고, 올해 150원을 추가 인상하기로 했지만, 정부의 물가 인상 억제 기조에 따라 내년으로 미뤄졌다. 재정난의 또 다른 요인인 공익서비스비용(PSO·지난해 6,035억 원 손실)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만 65세 이상 노인 등의 무임승차 비용(지난해 3,663억 원)은 정부 법령(노인복지법 등)에 따른 부담이지만, 정부는 손실 보전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

올해 한전의 전기요금 동결도 서민 부담과 2%대로 끌어내린 물가 자극을 우려한 정부의 압박에 이뤄진 결정이다. 오정근 자유시장연구원장은 "금리 인하가 시작됐으나 여전히 금리가 높은 수준이고, 민생고와 기업의 투자·일자리 감소도 고려해야 하는 정부로서는 지하철·전기요금 인상을 불가피하게 미뤘을 것"이라며 "경제 여건이 나아질 때까지는 공기업의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권정현 기자
박민식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