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한테 마약을 샀다'는 자백이 수사 단계에서 나왔다. 그러나 이 구매자는 법원 단계에서 진술을 번복했고, 구매자로부터 '그 사람'으로 지목된 이 역시 법정에서 이 진술의 신빙성을 부정했다. 구매자의 수사 단계 자백을 유죄 증거로 삼을 수 있을까. 대법원은 동종전과 5범의 피고인이라고 해도, 이런 진술이 유죄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마약류관리법 위반(향정)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지난달 29일 사건을 대구지법에 돌려보냈다. 필로폰 투약 혐의는 유죄가 인정되나, 매매 부분을 무죄로 보아 형을 새로 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김씨는 지난해 3, 4월 대구에서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2022년 12월 대구 한 병원 영안실 뒤편 골목길에 주차된 차량 안에서 A씨에게 현금 15만 원을 받고 필로폰 0.03g을 건넨 혐의도 적용됐다. 그는 마약류 범죄로 이미 다섯 차례 실형을 산 전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관건은 구매자 A씨 제보의 증거능력이었다. 김씨의 투약 혐의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모발 감정 결과 등을 통해 물적 증거가 확보된 상태였지만, 거래 혐의에 대해선 A씨가 경찰과 검찰에 피의자로 출석해 자신의 필로폰 매수 범행을 일관되게 털어놓은 내용이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A씨는 김씨의 1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다른 사람에게 산 것을 착각해 수사기관에서 잘못 말했다"며 돌연 진술을 번복했다. 김씨 또한 "A씨가 선처를 받기 위해 거짓진술을 한 것"이라면서 "A씨에 대한 검∙경의 피의자진술조서는 사실과 달라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1심은 투약 혐의만 유죄로 보고 징역 1년을 선고했다. "피고인 본인의 것은 물론이고, 대향범(대립된 행위를 통해 공동목표를 실현하는 범행의 상대방)을 포함한 공범의 수사 단계 피의자신문조서 역시 피고인이 내용을 부인하면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 등이 근거였다.
2심은 그러나 A씨의 자백을 증거로 채택하고 김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대법원 논리대로 유죄 증거로 쓸 수 없다면 수사기관이 적법하게 취득한 공범의 진술이 피고인의 선택에 따라 무효가 될 수 있어, 내부자 진술 없인 실체 파악이 어려운 조직∙권력형∙도박범죄를 처벌하기 어렵게 된다는 취지다. 2심법원이 대법원 판례를 따르지 않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공범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에 대한 1986년 판례만 답습하는 대법원 판결은 설득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기존 판례를 따르면, 공범 사건에선 유죄의 증거로 사용되는데 피고인에 대해선 증거로 사용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한다"고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의 말이 도중에 바뀐 배경엔 김씨 등 마약사범들의 위증교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과거 판례는 강압 수사를 막고자 하는 입법 목적에 따른 것인데, 위법수사 가능성이 현격히 낮아진 오늘날 이런 취지가 그대로 유지되긴 어려워 보인다"고 짚었다.
결국 항소심의 문제 제기는 대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법원은 기존 판례를 유지한 것이다. 이를 두고 한 고법 부장판사는 "범행은 갈수록 은밀해지고 지능화되는데 대향범 진술까지 피고인이 배척할 수 있다고 하면 조직범죄 소탕은 더욱 까다로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