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 꿈꾸는 외톨이 북한... 러시아 주도 브릭스 찾아 "다극화 세계 건설"

입력
2024.09.2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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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희 외무상, 1차 브릭스 여성포럼 참석
국방연구원 "북러 조약 토대로 브릭스·SCO 참여 가능"

러시아를 찾은 최선희 북한 외무상이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 여성포럼에 참석했다. 브릭스는 미국에 반대하는 러시아와 중국이 주도하는 다자 협의체다. 북한은 브릭스 참여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데, 만약 성사될 경우 국제사회 외톨이인 북한의 행동반경을 넓혀주는 것이어서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러시아와 북한의 밀착에 이어 국제정세의 위협요인이 하나 더 늘어나는 셈이다.

노동신문은 22일 최 외무상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제4회 유라시아 여성포럼과 제1차 브릭스 여성포럼에 참석해 연설했다고 전했다. 최 외무상은 '21세기의 외교와 지정학: 세계적인 과업 해결에 대한 여성들의 관점'이란 주제로 진행된 유라시아 여성포럼에서 "자주와 정의에 기초한 다극화된 세계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다자 협의체 참석은 이례적이다. 핵·미사일 개발로 인해 외교적으로 고립된 북한은 유엔을 제외하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비동맹운동(G77) 정상회의 정도만 모습을 드러내왔다. 북한이 외교지평을 확대한다면 이에 맞서야 하는 한국과 미·일, 자유주의 우방국들은 전선을 넓힐 수밖에 없다.

동시에 북한은 박상길 외무성 부상을 비롯한 대표단을 베트남, 태국, 라오스, 인도네시아로 보냈다. 이들은 모두 러시아와 협력을 강화하는 국가들이다. 인니의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달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회담했다.

최 외무상의 브릭스 여성포럼 참석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브릭스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기존 5개 회원국에 더해 몸집을 키우고 있다. 미국과 앙숙인 이란이 참여한 게 대표적이다. 특히 북한은 유엔보다 브릭스에 더 비중을 두는 모양새다. 최 외무상이 이번 행사에 참여한 반면, 24일 시작하는 유엔 총회에는 급이 낮은 대사급 인사를 보낸다. 전 세계 190여 개국이 참여하는 유엔보다 러시아가 주도하는 브릭스에 심혈을 기울이는 셈이다. 최 외무상이 강변한 '다극 질서'의 실체를 짐작할 만한 대목이다.

지난 6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방북으로 정점을 찍은 이래 북러 밀착은 올 하반기 반미연대를 확장하는 형태로 기승을 부릴 전망이다. 국방연구원의 두진호·손효종 연구위원은 11일 공개한 '보스토치니 회담 1년: 러북 협력 평가 및 전망' 보고서를 통해 북한의 러시아·중국 주도 국제협의체 참여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두 연구위원은 러시아가 북한과 체결한 조약을 근거로 북한을 러시아판 나토인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상하이협력기구(SCO), 브릭스 플러스 등에 초청해 미국 주도의 대러·대북제재를 무력화시키고,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및 소다자 안보체계를 견제하는 데에 주력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북러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 7·8조는 상호 "국제 및 지역기구들에 가입하는 것을 협조"하고, "방위능력을 강화할 목적 아래 공동조치들을 취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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