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헤즈볼라 공습한 이스라엘에 “정의 구현”… 당분간 관망 가능성

입력
2024.09.22 06:38
설리번 안보보좌관 “긴장 고조 우려되지만
당장 가자 휴전안 테이블 올릴 준비 안 돼”
유엔에선 이스라엘 삐삐 공격 규탄 목소리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이스라엘의 레바논 친(親)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 공습을 “정의 구현”으로 규정했다. 격화한 양측 간 갈등 상황을 당분간 두고 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인 죽인 테러범 응징했으니

설리번 보좌관은 21일(현지시간) 대(對)언론 온라인 브리핑에서 전날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헤즈볼라 특수작전부대 라드완의 이브라힘 아킬 사령관이 사망한 것에 대해 “언제든 미국인들을 살해한 테러리스트에게 정의가 구현되는 것은 좋은 결과라고 우리는 믿는다”고 말했다.

아킬 사령관은 1983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발생한 트럭 폭탄 테러를 주도, 미국 대사관 및 미군 해병대 막사에 있던 300명 이상을 살해한 혐의로 미국의 추적을 받아 온 인물이다. 미국 정부가 그에게 건 현상금이 700만 달러(약 94억 원)에 달했다. 그는 헤즈볼라의 거점으로 알려진 베이루트 남부 외곽 다히예 지역의 주거용 건물이 전날 이스라엘군의 표적 공습을 받았을 때 다른 헤즈볼라 지휘관 10여 명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물론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군사적 긴장은 최고조에 달한 상태다. 전날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미국 당국자들이 전면전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은 벼르고 있었다.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으로 양측 간에 가자지구 전쟁이 터진 뒤 헤즈볼라는 하마스 편을 들며 로켓 등을 동원해 이스라엘 북부를 공격해 왔다.

정세가 급변한 것은 지난 17일부터 이틀에 걸쳐 헤즈볼라가 사용하던 무선호출기(삐삐)와 무전기(워키토키)가 동시다발적으로 폭발, 레바논에서 사망자 39명을 포함한 3,0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나오면서다. 이 사건을 이스라엘의 선전포고로 간주한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보복 차원에서 로켓으로 이스라엘 북부를 공격했고, 이스라엘은 베이루트를 폭격해 아킬 사령관 등 헤즈볼라의 최고위급 지휘관들을 제거했다. 레바논 보건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전날 이스라엘 공습으로 인한 사망자가 최소 37명이며, 여기에는 어린이 3명과 여성 7명이 포함된다고 밝혔다.

이런 긴장 고조와 관련해 설리번 보좌관은 브리핑에서 “(확전 위험이) 극심하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휴전 협상에 대해 “당장 협상 테이블에 무언가(휴전 중재안)를 올려 놓을 준비가 돼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다만 “(휴전에 도달할 수 있는) 분명한 방안이 있다고 믿는다”는 입장은 고수했다. 헤즈볼라는 누차 대(對)이스라엘 무력 행사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가자전쟁 휴전이라고 밝혀 왔다.

“통신기기 무기화, 뉴노멀 못 돼”

국제사회는 ‘삐삐 공격’ 주체로 지목된 이스라엘을 성토하는 분위기다. 볼커 튀르크 유엔인권최고대표는 전날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긴급회의에 참석, “이번 공격은 통신기기가 무기화하는 전쟁의 새 국면을 보여 줬다. 이게 ‘뉴노멀’(새 표준)이 될 수는 없다”고 규탄했다. 황준국 주유엔 한국대사도 “외관상 무해한 휴대용 제품을 폭발물(부비 트랩)로 사용하는 것은 국제인도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 공격의 고삐도 늦추지 않고 있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21일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에서 피란처로 사용되던 알자이툰 학교가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받아 생후 3개월 된 아기를 포함한 어린이 13명과 여성 6명 등 적어도 22명이 숨졌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 지휘통제소에 있던 테러리스트를 정밀 타격했다고 주장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