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팔 동네’ 쌍문동의 모습이 슬픈 이유

입력
2024.09.21 04:30
19면

도봉구를 모르는 사람도 쌍문동은 다 안다. 2015년 뜨거운 인기를 누렸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응팔)'의 배경이 쌍문동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지역구인 도봉구를 소개할 때 많은 분이 '응팔 동네'라며 반가워하기도 한다. 내 고향 도봉구를 알아줘서 고맙지만, 기분이 썩 좋진 않다. 아니 솔직히 속상하다.

쌍문동은 작품 속 배경이고, 실제로 도봉구 쌍문동에서 드라마 촬영이 이루어졌다. 드라마가 방영된 2015년의 쌍문동에서 1988년 설정의 쌍문동을 촬영해도 시대적 이질감이 없다는 건 충격적인 일이다. 그로부터 10년이 더 흐른 현재도 마찬가지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에도 바뀌지 않은 우리 동네를 보면 저절로 슬픔과 분노가 교차한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지난해 서울 일반고 최초로 폐교를 발표한 고등학교가 도봉구에 있다는 점이다. 도봉구의 인구 감소는 특히 심각한 수준이다. 이른바 도ㆍ노ㆍ강(도봉ㆍ노원ㆍ강북구)의 2010∼2022년 인구감소율은 15.6%로 서울 전 권역에서 가장 높다. 노인 인구 비율도 서울 25개 구 중 두 번째로 높다. 나 역시 도봉구에서 결혼하고 아이도 낳은 젊은 부모 입장에서 젊은이가 사라지는 이유를 실감한다.

문제의 핵심은 주거에 있다. 내가 사는 도봉구 갑은 30년이 훌쩍 넘은 노후 아파트 단지이거나, 오래된 연립주택 밀집 지역이다. 낡은 아파트 단지의 경우 보안에 취약하다. 주차난은 물론, 아이들의 통학 안전 문제도 심각하다. 젊은 세대에게 신축 아파트는 쾌적한 삶의 공간이라는 의미를 초월한다. 특히 노후 소득 보장 제도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똘똘한 신축 아파트 한 채'는 불안한 노후를 버텨주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신축 아파트가 지어지지 않았던 도봉구에는 젊은 부부들이 터를 잡고 살아갈 충분한 유인이 없었다는 소리다. 실제로 서울의 인구 유출 원인 중 42.9%가 '주택과 주거환경'이라는 통계도 있다.

그렇다면 왜 도봉구를 포함한 서울 강북권 일대는 재건축과 재개발이 그토록 억제되거나 방치되었을까? 실마리는 노무현ㆍ문재인 정부에서 부동산 정책의 핵심 설계자로 일했던 김수현 전 사회정책수석의 저서 '부동산은 끝났다'에서 찾을 수 있다. "중대형 아파트가 밀집된 고소득층은 한나라당에 주로 투표했다. 그 반대의 경우는 민주당이나 야당이다. 때문에 다세대ㆍ다가구 주택이 재개발돼 아파트로 바뀌면 투표 성향도 확 달라진다. 한때 야당의 아성이었던 곳들이 여당의 표밭이 된 데는 그런 이유가 있다."

더불어민주당 부동산 정책의 구루(guru)라 불리는 사람이 공개적으로 이런 말을 뱉는다. 뒤집어 말하면 민주당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재개발과 재건축을 막았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실제로 개발에 뒤처진 강북권 일대는 민주당의 견고한 '표밭'이고, 공교롭게도 문재인 정권과 박원순 시정 동안 서울에서 재건축과 재개발은 극도로 제한됐다. 그동안 도봉구를 포함한 강북권 일대 주민은 취약한 주거환경과 개발 소외감을 감내해야 했다. 또 인구가 줄면서 기반시설 투자도 줄어드는 악순환도 겪었다.

1988년 쌍문동을 재연할 수 있는 2024년의 쌍문동, 그 모습이 슬픈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울이라는 테두리 안에 있지만, 서울로서 받아야 하는 혜택은 하나도 못 누리고 서울로서 받아야 하는 규제는 다 떠안았던 도봉구. 시간이 많이 늦었지만, 도봉구의 정치인이 바뀌었으니 도봉구도 바뀔 차례다. 책임이 매우 무겁다.


김재섭 국민의힘 도봉갑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