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가 자리에 연연한다고 생각하는 정치권 인사는 거의 없다. 두 번째인 총리직에서 본인 스스로 물러날 뜻을 공개한 상태다. 윤석열 대통령은 총리 교체가 급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 같다. 가을 국정감사, 의정 갈등을 비롯해 만만치 않은 국정현안, 쉽지 않은 국회동의 과정을 고려했을 것이다.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에선 “당분간 한 총리를 중심으로 한 내각 체제가 유지될 것”이라고 밝혔다. 보수와 진보 정권을 아우른데다, 외교 경험까지 갖춘 국정 경륜에 대한 신뢰로 보인다. 믿음대로 대정부 질의에서 정확한 통계와 수치로 야당 공세를 방어하고, 박지원 의원과는 막말 없는 ‘티키타카’까지 보여줬다. 윤 정부에서 2년 4개월째, 노무현 정부 시절 10개월까지 포함해 한 총리는 이제 민주화 이후 최장수 총리다.
호불호를 떠나 인사권자가 사실상 사의를 수용한 후 5개월 지나 국정 2인자를 다시 유임시킨 경우라면 국정에 도움이 되기는 어렵다. 그것도 지난 4월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진다는 의미에서 내각 총사퇴의 시동을 걸고는 취지와 무관한 일부 장관만 교체했을 뿐이다. 야당이 아닌 국민을 바라보며 정치한다면 이렇게 눙쳐서 해결될 게 없다. 더구나 정권심판 민의에도 변하는게 없다면 민심은 계속 심판할 수밖에 없다.
그러잖아도 문제를 털어내지 않고 임시 대응만 하면서 채 상병 사건, 김 여사 관련 의혹 등 현안은 해법 없이 쌓이기만 한다. 정치공방 수준을 넘어선 의혹들도 그렇지만 더 큰 문제는 내각의 국정 대응이 불신을 받는 점이다. 의료개혁은 처음 대통령 지지도에서 가장 긍정적 요소였으나 지금은 부정 요인으로 바뀌었다. 민생에 중요한 경제만 해도 정부는 잘 돌아가고 있다며, 5개월 연속 ‘내수회복 조짐’이란 낙관론만 펴고 있다. 그마저 대통령이 경제가 확실하게 살아나고 있다고 말한 다음 날 나빠진 경제지표를 발표, 손발 안 맞는 모습을 노출했다. 결국 금융시장이 대통령, 장관 발언에 고개를 갸웃하고, 정부당국 구두개입마저 먹히지 않는 초유의 사태가 불신 국정의 대가로 돌아와 있다.
윤 정부 임기는 절반이 지나가고 있다. 그런데도 친윤그룹은 세력도 정체성도 뚜렷하지 않고, 대통령 국정지지도는 안타까운 수치를 기록 중이다. 대통령실은 늘 지지율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국정을 잘 챙기겠다고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런 현실은 최저 국정 지지도란 민심 수치가 틀리지 않았음을 알릴 뿐이다. 오히려 위기경보인 여론을 무시하는 행보는 국민이 아닌 역사와의 대화는 하는 것이다. 역사에 평가를 맡기는 행보는 과거 대통령들의 임기 말 징후였다.
그런 탓인지 주변에 나라 걱정하는 이들이 제법 많아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나라가 어찌될지 모르겠다고 한다. 어쩔 수 없는 나라 밖 여건을 제쳐 놓는다면 깊어진 나라 걱정이 용산의 정치에서 시작된 것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희망을 얘기하지 않는 정치, 이끌지 못하는 정치인을 견뎌내는 사람들의 허탈함과 배신감이 결국 나라 걱정인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위기감을 갖고 국정을 쇄신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정쟁과 거리를 두고 민생에 집중하면서 정책에 대한 장악력을 높여야 하고 공직사회 기강도 엄정히 해야 한다. 총리의 역할이 더 요청될 수밖에 없는 일들이다. 어려운 민생과 시장불신을 감안하면 경제총리 인선을 통해 국정동력 회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총리교체 카드가 반드시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대통령이 보여줄 변화의 수단인 것은 분명하다. 생전 보수와 혁신의 경계를 가로지른 남재희 전 장관은, 어려울수록 가운데로 나아가 중심을 뚫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