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우정 신임 검찰총장은 19일 취임식에서 '민생범죄'라는 말을 세 차례 반복 사용했다. '민생범죄'는 '인권'(5회) '형사사법'(4회) '부패·경제범죄'(3회) 등과 함께 그의 취임사에 쓰인 220여 개 단어 중 빈도수 상위권에 들었다.
'민생범죄 대응'은 검찰총장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말이 아니냐고 하겠지만, 실제 취임사를 뜯어보면 역대 총장들마다 강조하고자 하는 '포인트'가 제각각이었다. 본보가 대검찰청 홈페이지에 공개된 35대(정상명)부터 45대(이원석) 검찰총장 취임사를 전수분석한 결과, '민생'이라는 낱말을 취임사에서 쓴 총장은 심 총장 말고는 이원석 전 총장(1회)이 유일했다.
역대 검찰총장 취임사는 정권과 시대에 따라 내용을 달리했다. 보수정권 총장들은 '북한'과 '질서' 관련 단어를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 말인 2011년 8월 취임한 한상대 총장은 취임사에선 매우 이례적으로 '종북'(3회) '북한'(4회) 등 표현을 동원했다. 취임 후 지휘한 주요 사건으로도 '왕재산 간첩사건'이 꼽힌다. 그가 취임한 전년인 2010년 연평도 포격사건과 천안함 피격사건이 같은 해 발생하며 남북관계가 얼어붙은 영향이 컸다.
박근혜 정부 하반기인 2015년 12월 취임한 김수남 총장은 '법질서'(6회) '시위'(6회) 등 주로 시위 대응 관련 발언에 비중을 뒀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대규모 집회·시위가 늘어났던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검찰개혁을 추진한 진보정권에서 임명된 총장들은 결이 달랐다. 노무현 정부 중반인 2005년 11월 취임한 정상명 총장은 당시 출범한 대검 미래기획단과 정부의 '자율적 개혁' 기조를 감안한 듯 '변화'(7회) '혁신'(7회) '미래'(5회) 등의 표현을 자주 썼다. 천정배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에 항의성으로 사퇴한 전임 김종빈 총장을 염두에 둔 듯 '중립'(6회) 역시 강조했다.
2017년 7월 문재인 정부 첫 총장으로 취임한 문무일 총장의 취임 일성에선 '제도'(4회)와 '신뢰'(4회) 등이 눈에 띈다.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문 총장 취임사는 매우 절제된 편인데, 당시 개혁을 수행하면서도 검찰 입장을 반영해야 하는 매우 조심스러운 위치에 있었던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총장 취임사가 늘 같은 공식을 따른 것은 아니다. 한상대 총장이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 등의 과정에서 '검란'으로 물러난 뒤인 2013년 4월 취임한 채동욱 총장의 경우 다른 보수정권 총장들과는 달리 '개혁'(8회) '위기'(5회) 등을 주로 언급했다. 그가 임기 내에 힘을 준 '검찰개혁위원회'와 '검찰시민위원회' 등 '위원회'(6회) 언급도 잦았다.
총장 개인 특징이 두드러진 경우도 있다. 2019년 7월 취임한 윤석열 총장이다. 그는 '헌법'(11회) '자유'(6회) '시장'(5회) 등 다른 총장들이 취임사에서 거의 쓰지 않은 단어들을 사용했다. 이 단어들은 그가 2022년 5월 대통령 취임식을 비롯한 각종 연설에서 정치인으로서 자주 사용한 것이기도 하다. 정부 기조보다는 총장의 신념이 보다 많이 담긴 취임사로 해석된다.
윤석열 정부 첫 검찰총장인 이원석 총장 취임사에선 '기본'(3회)과 '기본권'(3회) 언급이 잦았다. '기본'은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맥락으로, '기본권'은 '국민의 생명·신체·안전·재산을 보호해야 한다'는 맥락으로 주로 쓰였다. 실제 이 총장은 임기 내내 정치적 관심도가 높은 사건에 대해선 '원칙'을 강조하고 검찰 내부적으로는 '민생범죄 대응'에 힘을 쏟았다.
역대 총장들 사례를 대입하면, 심 총장은 임기 중 민생범죄 및 부패·경제범죄 대응에 힘을 쏟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선 "민생 범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는 데다 수사권 조정 이후 형사사건 대응 역량이 심각한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강조해야만 하는 내용"(고검장 출신 변호사)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민생범죄 대응은 일선의 몫이고, 총장은 정치적 외풍을 막아야 하는 자리"라며 "민생 언급은 총장이 책임을 회피하려는 구실이 될 수 있다"(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지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