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에서 연이틀 발생한 무선호출기(삐삐)·무전기(워키토키) 동시다발 폭발 사건과 관련한 국제사회의 규탄이 쏟아지고 있다. 비난의 초점은 이스라엘이다. 레바논 친(親)이란 무장 정파 헤즈볼라를 노린 이스라엘의 비밀 작전이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어서다. 어린이 2명을 포함, 최소 32명이 숨지고 3,200명 이상이 다쳤다는 점에서 ‘이스라엘의 테러’로 규정하는 목소리도 힘을 얻게 될 것으로 보인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9월 의장국 슬로베니아 주유엔 대표부는 오는 20일(현지시간) 안보리 긴급회의를 개최한다고 18일 밝혔다. 아랍권 국가를 대표하는 안보리 회원국 알제리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17, 18일 레바논 전역에서 벌어진 삐삐·워키토키 폭발 사건 대응 방안 논의를 위해서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레바논에서의 극적인 긴장 고조이자 심각한 위험으로, 긴장 고조를 피하기 위해 모든 조처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엔 인권 수장은 국제법 위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폴커 튀르크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충격적이고 민간인 피해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용납할 수 없다"며 “민간인과 무장단체 구성원을 구분하지 않고 다수를 공격한, 국제인권법·국제인도법을 어긴 행위”라고 지적했다.
유럽연합(EU)도 가세했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성명을 통해 “특정 대상을 표적으로 삼은 것처럼 보여도, 어린이를 비롯한 민간인들이 무차별적 피해를 입었다”며 “비난할 수밖에 없는 공격”이라고 비판했다.
직접적 거론은 없었지만 모두 이스라엘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구테흐스 사무총장도 이번 폭발을 “주요 군사 작전에 앞서는 선제 공격”이라고 못 박았다. 군사 작전 모양새를 취했으나, 사실상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불특정 다수를 표적으로 삼은 테러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인 셈이다. 유엔총회는 또, 이날 이스라엘을 상대로 팔레스타인 지역 불법 점령을 12개월 안에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결의안도 채택했다. 투표에 참여한 181개국 중 3분의 2가 넘는 124개국이 찬성표를 던지며 대(對)이스라엘 압박에 동참했다.
난처해진 쪽은 미국이다. 가자지구 휴전과 중동 안정을 위한 미국의 노력에 동맹국인 이스라엘이 또 찬물을 끼얹은 꼴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란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게 미국의 최대 우려다. 미국 백악관은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레바논에서 벌어진) 어제나 오늘 사건에 관여되지 않았다”고 밝히며 선을 그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 같은 입장을 거듭 강조한 뒤, ‘이스라엘로부터 사전 경고를 받았냐’라는 질문에 “그런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어 “우리는 레바논에서 또 다른 전선이 생기는 것을 막는 최선의 방법이 외교라는 것을 믿고 있다”고 부연했다. 미국 CNN방송은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비공식 대화 채널을 통해 ‘레바논 공격에 관여하지 않았으며, 이란이 긴장을 고조시켜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이란 측에 전달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