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탑 쌓기, 그 절실함에 대하여

입력
2024.09.1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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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벅적한 거리에서 딱 한 걸음만 들어가니 느닷없이 중세 시대다. 어리바리 길을 찾는 관광객을 노리는 소매치기가 서성이는 람블라 거리와는 몇 발 차이로 또 다른 세상. 바르셀로나의 옛 도심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지역이자 로마부터 이어온 정치 중심지 '산 자우메 광장'에는 바르셀로나 시청과 카탈루냐 자치정부 청사가 마주 섰다. 120년을 이어온 바르셀로나 최대 축제 '라 메르세(la Mercè)'의 개막연설도 오늘 저녁, 이곳에서다.

나팔 소리에 맞춰 춤추는 거인 인형의 퍼레이드도, 악마 분장을 하고 폭죽을 터트리며 달리는 불꽃놀이도 장관이지만,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카탈루냐의 오랜 전통인 '인간 탑 쌓기'다. 서로의 어깨에 한 단계씩 올라서며 사람으로만 쌓는 탑은 무려 6층에서 10층 사이. 지금껏 10층짜리가 성공한 적이 단 세 번밖에 없을 만큼 상당한 기술과 훈련이 필요한데, 놀랍게도 탑을 쌓는 이들은 모두 서커스단 같은 전문가가 아니라 일반인이다.

나이 성별 계층 상관없이 많게는 수백 명까지 한 팀을 이루는 이들은 자신의 공동체를 대표한다는 자부심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저마다의 탑 쌓기 비법은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데, 꼭대기로 기어 올라가던 꼬맹이가 자라나 어떤 탑을 세우고 또 안전하게 허물지 전략을 짜는 듬직한 지도자로 성장한다.

축제의 정점인 일요일 정오, 공동체를 상징하는 색색의 셔츠를 입은 이들이 광장을 가득 메운 인파 속에서 연신 입술을 깨물며 의지를 다진다. 대결이 시작되면 미리 연습한 순서대로 줄지어 어깨를 밟고 올라가며 더 견고하고 더 높은 탑 쌓기에 도전한다. 세상사가 계획대로만 되는 건 아니라 잘 쌓던 탑이 기우뚱하거나 무너져 내리기도 여러 번, 균형이 흩어지면 사고 예방을 위해 다시 처음부터 쌓기도 여러 번. 시간이 길어질수록 바닥을 지지하는 이들의 얼굴은 터질 듯 붉어지고 부들부들 다리가 떨리기 시작한다.

멀리에서 보면 얼마나 높이 오르는지를 겨루는 싸움 같지만, 사실은 얼마나 튼튼하게 바닥에서 함께 버티느냐가 관건이다. 2층 탑으로 선 이가 쓰러지지 않도록 엉덩이를 받쳐주고, 다음 사람은 그 엉덩이를 받힌 손에 힘이 실리게 잡아주고, 다음 사람은 그 손이 밀리지 않도록 어깨를 밀어주고. 이렇게 서로가 끝없이 이어지며 단단한 한 덩어리가 된다. 끝까지 버티려고 입에다 질끈 천까지 물고 선 얼굴을 마주하면, 덜덜 떨려오는 온몸의 진동에도 누구 하나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지켜보다 보면, 그 진심에 그만 눈물이 왈칵 흐른다.

얼마 전 1층 가게를 오랫동안 지키던 사장님이 돌아가셨다. 아직 부고를 들을 나이는 아니었는데, 환자를 받아 줄 병원을 찾으며 떠돌다 응급차에서 맞은 죽음이 참 어이없게 느껴졌다. 팔순을 훌쩍 넘긴 아버지에게 중증 상황이 오면 어찌해야 할지 답을 모르겠는 요즘, 국내총생산(GDP) 14위 국가라는 높이 쌓아 올린 위상을 위태롭게 받치고 있는 우리의 힘겨운 얼굴이 인간 탑과 자꾸 겹쳐졌다. 하루하루 비어가는 상가와 발주가 뚝 끊긴 공장들, 매년 들어오던 선물 주문마저 사라져 답답한 추석을 보낸 자영업자. 모두가 이리 바들바들 떨어가며 한계까지 버티고 있음을, 그리고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바닥의 균열이 슬금슬금 일어나고 있음을 제발 알아야 할 텐데 말이다.


전혜진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