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 상권이 막을 내리는 저녁 8시, 골목 곳곳에서 집기 부수는 소리가 들린다. 낮에 하트 풍선을 걸고 외국인 관광객들을 불러모으던 매장도 마지막 손님을 내보내자마자 철거 준비를 한다. 한 국내 디자이너 가방 브랜드 팝업 운영을 준비하느라 2주간 제시간에 퇴근하지 못한 가영(가명)씨도 유리창에서 매장용 인테리어 스티커를 떼느라 여념이 없다. "오늘까지 계약 기간이라 내일 아침 전에 철거해야 해요." 1t짜리 트럭 두 대 안에 해체된 팝업스토어 가벽과 진열대, 광고판이 이리 저리 담겼다. 단 3시간 만에 붐비던 팝업스토어는 다시 '임대'를 붙인 공실로 돌아갔다. 낮의 화려함은 찾아볼 수 없는 성수동은 '힙 플레이스'보단 유령도시에 가까워보였다.
팝업스토어는 짧게는 하루부터 길게는 두세 달 동안 일반 매장 대비 낮은 비용을 투입해 시장 진입 가능성을 테스트해볼 수 있는 마케팅 방식이다. 2009년경 처음 한국에 등장해 젊은 층에 인기를 끌더니 최근까지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바이럴되며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성수동 연무장길을 중심으로 패션, 차량, 음식 등 업종을 불문하고 매달 평균 30~50개의 팝업스토어가 열리고 있다. 팝업스토어 운영 일정만 따로 정리해서 알려주는 SNS 계정들도 등장했다.
팝업 열풍은 연무장길 일대의 임대료를 상승시킴과 동시에 원주민들을 밀어냈다. 서울시 상권분석서비스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성수2가3동(연무장길 일대)의 평당 임대료는 1년여 만에 약 33% 올랐다. 10평당 200만원을 넘는 수준이다.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수제화를 만든 전태수 명장도 300만원 오른 임대료를 피해 연무장길에 10년째 자리 잡고 있던 가게를 이전했다. 임대료를 5%이내로만 올릴 수 있다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상 전월세 상한제 조항도 '10년 유효기간' 앞에선 소용 없었다. 다른 터줏대감 수제화 업체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수제화거리에서 오랜시간 영업해온 유홍식 명장 또한 연무장길 메인 거리에서 조금 떨어진 건물 2층에 공장만 유지하고 있다.
기존 업체들이 떠났지만 높은 임대료 탓에 주인을 찾지 못하고 공실로 남아있는 경우도 많다. 전 명장의 매장도 9월까지 간판을 떼고 있지 않다가 최근 국외 브랜드 화장품 가게 입점을 위해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이날 발견한 연무장길 공실 네 곳 중 세 군데가 각각 과거 가죽 피혁, 인쇄소, 아크릴 업체였다. 지난 4년간 성수동 일대를 청소해왔다는 환경미화원 김모씨는 "이곳에 위치한 가죽피혁 업체 사장님도 고민하시더니 끝내 이전을 결심하시더라"라며 “임대료를 이렇게 올리는데 버틸 재간이 있나”라고 말했다.
공실이어도 임대인들의 걱정은 크지 않다. 팝업 매장의 운영 방식 덕이다. 1년 이상의 장기 임대 계약이 없는 팝업은 '1년간 최대 5%'의 임대료 상승 제한'이 있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곧, 부르는 것이 값이다. 한 통건물 대형 팝업매장은 일주일에 최대 1억 원의 임대료를 기록하기도 했다. 장기 임대 없이 한 달 내내 비워놔도 단 몇일 만에 한 달 치 임대료를 벌 수 있단 뜻이다.
팝업스토어의 영향으로 성수동 상권은 대기업 의존적으로 변하고 있다. 막대한 자금력을 가진 대기업이 탄탄한 기획과 구성으로 대형 매장을 빌려 장기간 팝업을 운영하는 양상은 팝업이 넘쳐나는 연무장길에서 단연 눈에 띄는 방식이다. 지난 추석연휴 열린 8개의 팝업 중 다섯 곳이 중견기업 혹은 해외 기업이었다. 팝업스토어 운영 대행을 주로 하는 한 기업 대표는 "현재 단기임대료마저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임대료를 견딜 수 있는 대기업만 계속해서 팝업에 도전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며 "성수동 만의 문화를 만들어가기 어려운 환경"이라 지적했다.
한편, 계속해서 생산되는 쓰레기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팝업 특성상 인테리어가 돼있지 않고 팝업 매장에 입점하는 기업들이 수백만원을 투자해서 손수 진열장과 인쇄물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 소품들은 팝업 철거시 곧바로 폐기된다. 서울시 열린 데이터 광장에 따르면 성동구의 폐기물 배출량은 2018년 51.2톤에서 2020년 220.1톤, 2022년 518.6톤으로 급증했다.
공업지대 특성을 살린 카페나 복합문화공간이 주목받아 한국의 '브루클린'이라 불리며 도시재생으로 위기를 타개한 성수동은 또다시 위기에 봉착해있다. 이명훈 한양대학교 도시대학원 교수는 “서울역, 광화문 등이 유동인구가 원래 많은 곳이 아니기 때문에 과거 가로수길처럼 대형 자본들이 들어와서 휩쓸고 나가면 이후 피폐화될 수 있다“며 “지역 특성을 살려 영세자본과 대형자본이 함께 서서히 성장하는 모델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