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은 '게임이용장애' 의제가 다시 수면 위로 올랐다.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게임이용장애를 국제질병분류에 포함시킨 이후, 이를 그대로 국내 질병분류에 도입할지 여부가 이르면 2025년 10월에 결정되지만 정부의 방침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로 질병코드 등재를 찬성하는 정신의학계와 반대하는 게임업계 양쪽으로 의견이 극명히 엇갈리는 상황이다.
18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게임이용장애'를 국내 질병분류 표준에 등재할지 여부를 놓고 찬반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현재 논쟁이 벌어지는 원인은 WHO가 2019년 발표한 제11차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11)에 '게임이용장애'라는 항목의 질병코드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찬반 양측 모두 통상 ICD의 기준이 국제 표준으로 간주되므로 한국 통계청이 작성하는 표준질병·사인분류(KCD)에도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가 들어갈 것으로 내다본다.
ICD-11의 내용은 2030년께 적용되는 KCD의 10차 개정안에 반영될 것으로 보이는데, 그 초안이 마련되는 시점이 내년 10월이다. 이 때문에 게임업계가 반대 여론 결집에 나선 것이다. 앞서 ICD-11의 게임이용장애 등재 직후 이를 국내에 도입할지 여부를 다루기 위해 정부와 의료계·게임계·전문가 등이 참여한 '민·관 협의체'가 출범했지만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12일 강유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주도로 열린 'WHO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국내 도입문제 공청회'에 양측 전문가가 참석해 첨예한 논쟁을 벌였다. 찬성 측은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다루고 더 나아가 치료하기 위한 연구가 많이 축적됐다고 강조한 반면 반대 측은 게임 이용 자체와 다른 질병의 원인을 구분하는 연구가 불충분하다고 맞섰다.
가장 격렬한 반발은 게임업계와 이용자 쪽에서 나온다. 게임 자체를 질병의 원인으로 간주하는 것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찬성 측 이해국 가톨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게임이용장애의 원인이 게임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게임을 중독적으로 이용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치료와 예방 등 공중보건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그럼에도 반대 측은 '낙인 효과' 등 게임 자체에 대한 부정적 여파를 우려한다. 조문석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전체 국민의 60% 이상이 게임을 이용한다"며 "등재 이후 파급 효과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의료계에서도 신중론이 나왔다. 박건우 고려대 안암병원 뇌신경센터장은 "게임이용장애란 분류로 질병의 실제 원인이 불분명해지거나 불필요한 의료 개입을 초래할 수 있다"며 '과잉의료화'의 여지가 있다고 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찬성 측은 실제 ICD-11의 게임이용장애 질병 진단 기준은 엄격하다고 밝혔다. 이상규 교수는 "1년 이상 게임에 대해 집착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 계속하는 경우에만 (게임이용장애) 진단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한때 부처별로 찬반이 엇갈리며 혼란을 겪던 정부는 한발 물러서 시민사회의 논의를 지켜본 후 등재 여부를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김연숙 보건복지부 정신건강관리과장은 "민관협의체를 중심으로 의견 수렴을 충분히 할 필요가 있으며 국내 여건과 상황을 고려해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분류체계를 운영할 것"이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