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년 가족처럼 지낸 고려아연과 영풍, 두 가문이 경영권을 두고 분쟁을 벌이는 가운데 추석 명절 직전 국내 1위 사모펀드(PEF) 운용사 MBK파트너스가 새로 뛰어들면서 양측은 연휴 내내 더 치열하게 싸움을 이어갔다.
①13일 MBK파트너스가 주식 공개매수에 나서자 ②고려아연 측은 물론 울산 시장과 시 의원 등 지역 정치인들까지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추석 다음 날인 ③18일 영풍과 MBK 측이 강하게 반박했고 ④고려아연 측은 끝내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MBK파트너스는 18일 오전 입장문을 내고 이번 공개매수 시도가 적대적 M&A라는 일각의 주장을 부인하며 최대주주의 경영권 강화 차원이라고 강조했다. MBK파트너스는 "고려아연은 장형진 고문을 동일인으로 하는 '영풍'그룹 기업집단의 계열사이고 영풍 및 장씨 일가는 고려아연의 최대주주"라며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는 최대주주(영풍)와 함께 시장을 통해 지분을 추가로 취득해 경영권을 공고히 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년 넘게 두 가문의 지분은 15%포인트 이상 차이가 났다며 현대차·한화·LG 등의 지분은 최윤범 회장의 우호 지분이 아니라고 MBK파트너스는 덧붙였다.
앞서 MBK파트너스는 13일 주당 66만 원에 고려아연에 대한 공개매수를 10월 4일까지 진행한다고 알렸다. 공개매수 목표 지분은 약 7∼14.6%(144만5,036주∼302만4,881주)이며 대금은 약 2조 원에 달한다.
그러자 울산시장이 고려아연의 백기사를 자처하며 나섰다. 고려아연은 울산 울주군 온산읍에 온산제련소를 두고 있다. 16일 김두겸 울산시장은 긴급 성명을 내고 "고려아연은 이차전지 핵심 소재 생산 등 울산의 미래 먹거리 산업을 책임지고 있다"며 "중국계 자본이 대거 유입된 사모펀드 운용사인 MBK파트너스 쪽으로 고려아연 경영권이 넘어가면 이후 연구개발 투자 축소, 핵심인력 유출, 해외 매각 등이 시도될 수 있고 울산의 산업 생태계 전체에 심각한 타격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시장은 18일에도 울산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같은 주장을 이어갔다. 17일 울산시의회도 비슷한 내용의 성명을 냈다.
MBK파트너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 회사는 18일 입장문에서 김 시장의 '중국계 자본' 언급과 국가기간산업 경쟁력 훼손 우려를 반박했다. 회사 측은 "MBK파트너스는 2005년에 설립돼 국내 금융 당국의 감독을 받는 국내 사모펀드"라며 "펀드에 출자하는 유한책임투자자(LP)들은 국내 및 세계 유수의 연기금들과 금융기관들로 중국계 자본이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고려아연 지분 인수 이후에도 직원 고용을 종전과 같이 유지하고 울산기업으로서 재도약하는 것을 돕겠다"고 밝혔다.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도 이날 "국가기간산업인 고려아연을 중국에 팔 수도 없고 팔지도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울산 고용시장과 일자리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도 김 부회장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업들에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진행한 적이 없다"며 "그럴 일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영풍과 MBK파트너스 측은 주주환원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겠다며 당근도 제시했다.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최대주주의 경영권 강화 목적의 공개매수가 마무리된 후 훼손된 주주가치를 회복하기 위해 적극적인 주주환원정책을 펼치겠다"며 "고려아연이 매입한 자사주를 전량 소각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고려아연 측 반발은 더 거세졌다. 박기덕 고려아연 대표이사 사장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기업사냥꾼 MBK의 약탈적 M&A에 반대한다"며 "고려아연의 주주인 영풍이 MBK파트너스와 결탁해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공개매수에 반대 의사를 공식 표명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영풍이 환경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을 위반해왔고 대규모 적자로 경영 능력도 인정받지 못했다"며 "영풍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방기한 채 '약탈적 자본'과 결탁해 고려아연의 지분과 경영권 확보에만 몰두해 왔다"고 주장했다.
고려아연 측은 법적 대응까지 예고했다. 고려아연은 "영풍정밀 및 영풍의 주주들과 함께 MBK파트너스와 장형진 고문을 포함한 영풍 경영진에 대해 법적 대응에 나설 예정"이라며 "MBK와 영풍이 공개매수를 위한 이른바 경영협력 계약을 체결하면서 영풍은 회사 차원에서 손해를 입게 되는 반면 그 이익은 고스란히 MBK에 넘어간다는 점에서 영풍 전체 주주들에 막대한 손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