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떼기' 논란 폐지된 지구당… 한동훈·이재명, 왜 부활 원하나

입력
2024.09.1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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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대표, 지구당 '부활'에 공감… '노림수'는 달라
원외 인사, '돈·장소·사람' 막혀… 현역 형평성 문제

"개 눈에는 똥만 보이죠."

추석 연휴를 앞두고 국민의힘 원외 당협위원장 단체대화방에 지구당 부활을 반대하는 주요 정치인 기사가 올라오자 나온 반응이다. "(지구당 부활에) 반대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20세기 때 시대착오적 돈 얘기만 하고 있다" "대안도 없이 반대하는 저분들은 좀 실망이다" 등 날 선 반응이 뒤따랐다.

한동훈 국민의힘·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앞다퉈 지구당 부활을 공언하면서 이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특히 원외 정치인의 경우 여야를 막론하고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 '차떼기' 등 불법 정치 자금의 온상으로 지목돼 사라진 지구당 부활을 이들이 기대하는 이유는 뭘까.

"최소한의 정치활동 보장하라"… 현역과 형평성 문제

18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 원외 정치인들의 요구는 "최소한의 정치 활동을 보장해달라"는 것이다. 현행 정당법·정치자금법의 경우 국회의원이 아닌 경우 후원회와 사무실, 유급 직원을 둘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정치를 하는 데 필요한 자금과 장소, 인력이 모두 묶여있는 셈이다.

"정치를 하려면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당원들과 회의 한 번 하려고 하면 식당이나 카페 등을 빌려야 해요. 그럼 거기에 드는 비용은 갹출해야 합니다. 대신해서 지출하면 정치자금법 위반이에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민원의 날'을 한다 칩시다. 사무실이 없는데 어디서 하나요? 유급직원을 둘 수 없으니 당원들에게 문자를 보낼 때도 직접 해야 해요. 총선 때 예비후보로 등록하기 전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현행법이에요." - 이재영 국민의힘 서울 강동을 당협위원장

"지역 주민과 소통하기 위한 거점 공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시당위원장이 되고 보니 법에서 허락하는 부산시당 당사에선 시민들을 만날 수가 있는데, 지역엔 사무실이 없으니까 여전히 만날 수가 없어요. 시민들이 어디에서 누굴 만날 수 있다라고 아는 건 (정치) 참여에 있어서 굉장히 큰 힘인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시민들의 얘기를 들을 수 있다는 건 훨씬 더 (정치가) 생산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겁니다." - 이재성 민주당 부산시당위원장 겸 사하을 지역위원장

문제는 여야 정당이 이들에게 정당법상 금지하고 있는 사무실 등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당협위원장들을 평가하는 당무감사 때 사무실 소유 여부, 당원 교육 횟수 등이 주요 평가 지표다.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총선을 준비하는 원외 정치인들에게 당무감사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이렇다 보니 시·구의원 합동사무소나 'XX포럼' 등 간판을 달고 편법으로 사무실을 운영하는 경우도 상당수다. 또 다른 원외 당협위원장은 "정당이 원외 정치인에게 잠재적 범죄 행위를 강요하고 있는 셈"이라고 토로했다.

실제 이런 음성적 정치 활동이 사법 처리된 경우도 적잖다. 민병주 서울시의원은 당협 사무국장 시절 당협위원장 윤모씨와 포럼을 만들고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2022년 대선 등에서 포럼 사무소를 선거 사무소로 운영한 혐의로 기소돼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또 다른 원외 정치인은 "사무실에서 4, 5명 당원들과 약식 대화를 나눴는데,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경고' 조치가 오기도 했다"며 "정치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후원회 사무실을 두고 보좌진 지원을 받는 현역 의원들과 형평성 문제가 대두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동훈 "당내 입지 강화" 이재명 "외연 확장"

한동훈 이재명 두 대표 또한 지구당 부활 이유로 '형평성' 문제를 꺼내 들었다. 한 대표는 앞서 전당대회 당시 "기득권의 벽을 깨고 정치신인과 청년들에게 현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지구당을 부활하는 것이 정치개혁이라고 생각한다"며 "정치영역에서의 '격차해소'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 또한 앞서 전당대회 때 "현역(의원)과 현역 아닌 사람들 간 불공정이 너무 심하다"며 "신인들도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도와달라"고 했다.

과거와 달리 정치자금이 투명화됐다는 것도 두 사람의 공통된 인식이다. 과거에 비해 당비를 내는 당원들의 수가 큰 폭으로 증가해, 불법 정치자금 수요가 줄었다는 평가도 있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양대 정당의 총수입 중 당비의 비율은 20년 전 10%(한나라당 9.0% 새천년민주당 2.7%)에 못 미쳤지만, 지난해를 기준으로 했을 때 30%(국민의힘 31.3%, 민주당 31.9%)를 웃돈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지난해 11월 발간한 '당협 운영실태와 개선과제' 현장실태조사 보고서에서 각종 경조사 비용 절감 등을 언급, "유권자 의식수준 향상으로 지구당 위원장이 운영을 전횡하긴 힘든 상황"이라며 "지구당이 부활되더라도 과거에 비해 운영비 규모는 줄어들 것"으로 판단했다.

다만 지구당 부활을 내건 두 사람의 정치적 노림수는 다르다는 게 정치권의 평가다. 한 대표의 경우 당내 입지 강화다. 여전히 윤석열 대통령의 당 장악력이 강하기 때문에, 원외 당협위원장들을 중심으로 세력 강화를 꾀하기 위한 것이란 관측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날 BBS라디오에 출연해 "전당대회 때 당협위원장들의 표를 받아야 되잖느냐. 그 의도를 순수하게 안 보는 것"이라며 "정치개혁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을 하고 내놓은 방안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의 경우 '외연 확장' 전략으로 읽힌다. 지난 대선 0.73%포인트 차이로 석패한 만큼, 지구당을 부활시켜 열세 지역에서 당세를 확장하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것이다. 특히 부산·울산·경남(PK) 등 이른바 '해볼 만한' 지역의 경우 잃을 것보다 얻을 게 많다는 인식도 있다. 수도권 현역 의원이 많은 만큼 당내엔 "불리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배경으로 깔린 것으로 보인다.

국회엔 지구당 부활을 골자로 한 정당법·정치자금법 개정안 등이 발의된 상태다. '지구당'의 부정적 이미지를 고려해 '지역당'으로 명칭을 바꾸고, 2명 이내의 유급 직원을 두도록 하는 내용이 많다. 다만 후원금 액수와 관련해선 여야 간 차이가 있다. 윤상현·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안엔 현역 의원과 같은 1억5,000만 원을 모금할 수 있도록 한 반면, 민주당의 경우 5,000만 원~1억 원의 상한을 두고 있다.




김도형 기자
김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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