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맞벌이 중인 40세 남성 A입니다. 3년 전 양육 도움을 받기 위해 처가 근처로 이사했습니다. 장모님의 (손)자녀 돌봄과 가사노동에 감사드리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가끔 장모님의 선 넘은 언행에 감정이 상합니다. 또 부부싸움이라도 하면 장모님이 달려와 ‘자네 부모에게 아내한테 이렇게 행동하라고 배웠나?’라며 함부로 말씀하십니다. 특히 처가댁이 기독교 집안이라 종교도 없는 제가 일요일마다 교회에서 반나절을 보냅니다. 지방에 있는 본가와의 왕래는 명절이 전부인데 처가와의 왕래는 너무 잦다고 여겨져 억울하기까지 합니다.
아내에게 △가족의 사생활 보호 △주말 휴식이 필요하다 △종교 강요 말라 등 말해봤지만, “우리 집 구입에 부모님이 3억 원을 보태 주셨고, 아이들도 엄마 덕분에 잘 자라는데, 잠시 교회 참석도 못 하냐”는 아내의 반박에 말문이 막힙니다.
결국 이번 명절에 갈등이 불거졌습니다. 장모님께 무심코 “올 추석엔 저희 부모님 좀 더 뵙고 오겠습니다. 매일 뵙고 있으니, 이번 연휴엔 굳이 안 찾아봬도 되겠죠?”라고 말했다가 ‘개념 없는 사위’로 찍히고 말았습니다. 물론 이번에 한 말이 실언이란 건 인정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런 ‘처(妻)월드’ 생활을 해야 할까요?
A: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고부갈등’은 많이 언급돼 왔지만, ‘장서갈등’(丈壻葛藤)은 비교적 최근 주목받는 단어다. 장모(丈母)의 ‘장’과 사위 ‘서’(壻)를 조합한 단어로, 이 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일컫는다.
고부갈등이 가부장(家父長)의 잔재로 시모와 아들 간의 밀착, 시부모의 월권이 원인이라면 장서갈등은 가모장(家母長) 가정에서 장모와 딸 간의 밀착, 처부모의 월권이 원인으로 작용한다. 최근 아내의 경제 활동이 활발해지며 처부모의 도움을 받는 부부가 늘어나면서 덩달아 장서갈등도 늘어났다.
필자의 상담 사례에 비춰보면, 장서갈등의 원인은 일곱 가지로 요약된다(표 참조).
실제로 한 결혼정보회사의 설문조사(2018년)에 따르면, 남성의 이혼 사유 3위가 장서갈등인 것으로 나타났다. 고부갈등은 1년에 수차례 명절, 가족 행사 등에 집중(국한)되지만, 처가로부터 자녀 양육 도움을 받는 경우 장서갈등은 1년 365일 지속되기 때문에 사위들의 고충이 가볍지 않다.
위 사례 A씨의 경우 처가 중심 문화, 폭언하는 장모와 방관하며 처가 편만 드는 아내 사이에 끼어들 수 없이 주변만 맴도는 신세다. 집안에서 가족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지 못함에 불만을 가졌지만 이를 타개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이런 사위의 회피를 보며 장모는 ‘처가에 의존하는 못난 사위’라는 낙인을 찍으면서 장서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자녀들 역시 아버지와의 유대가 약해지고 어머니와의 유착이 강해지면서 ‘미래의 장서갈등, 고부갈등’의 씨앗으로 자라나고 있었다.
이에 필자가 가족 상담을 통해 장모, 딸(아내), 사위(남편)에게 제안한 솔루션은 다음과 같다.
먼저, 장모(부모 세대)는 ‘부모와 딸의 삶의 몫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딸 부부 고유의 공간, 시간, 상호작용, 의견 존중 등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도와주거나 조언해야 한다면 딸에게 먼저 제안하고 이 제안을 받아들일지 여부는 부부 둘이 결정하도록 하자.
둘째, 딸(아내)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딸은 부모에 대한 의존성을 벗어나 아내, 엄마 역할에 충실해야 하며 남편의 영역과 권한을 지켜줘야 한다. 자녀가 건강한 결혼생활의 질서를 보고 자라야 함은 말이 필요 없다. 만약 장서 간 대립 상황이 만들어졌다면 딸이 완충자로서, 부부 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위 사례의 경우 딸은 남편에 대한 어머니의 언사를 방관하지 않고, 처가의 종교 강요에 대한 남편의 자율 선택권을 보장해 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위는 아내가 알아주기만 기다릴 게 아니라 차분한 태도로 불편함을 알려야 한다. 또한 시가-처가의 다른 문화와 생활방식을 인정하고, 평소 처가의 육아, 가사 등의 지원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다른 부부 갈등과 마찬가지로 장서갈등의 근간에는 ‘부부의 낮은 유대감’이 도사리고 있다. 면역력이 약하면 질병에 쉽게 노출되듯, 부부 체계가 약하면 외부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가장 단순하고 명료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자. ‘지금으로부터 30~40년 후, 내가 암에 걸린다면 그때 누가 내 곁에서 돌봐줄까?’ 그것은 바로 배우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