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외교부 예산안에 지난 3월 이종섭 전 호주대사가 부임 11일 만에 귀국해 참석했던 '방위산업협력 공관장 회의' 예산이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 외압 의혹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를 받던 도중 임명된 이 전 대사를 귀국시키기 위해 일정을 '급조'하고, 이를 위해 7,000만 원이 넘는 세금을 투입한 것이 입증된 셈이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홍기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19일 외교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내년도 외교부 예산안에 '방위산업협력 공관장 회의'라는 명목으로 제출된 내역은 전무하다. 향후 계획에 대해서도 외교부는 "개최 필요성에 대해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의원실에 보고했다. 이 전 대사가 급거 귀국해 참석한 올해 초 주요 6개국 방위산업협력 공관장 회의가 후속 계획이 없는 '일회성'이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예산안을 들여다봤다. 올해 열린 '방위산업협력 공관장 회의'를 지칭하는 표현은 등장하지 않았다. 외교부는 매년 각국 대사가 참석하는 '재외공관장 회의'를 여는데, 이를 위해 '공관장회의 및 기타 외교현안 대응'이라는 사업으로 예산을 확보한다. 내년에는 해당 사업 아래 예산 산출 근거로 '재외공관장 회의'가 1회에 한해 15억2,800만 원이 잡혀있는 게 전부다.
통상 방산부문은 재외공관장 회의 기간에 별도 세션으로 다뤄졌다. 예규상 공관장 회의 여비 등 예산 관련 사항은 주관부서에서 일괄적으로 처리하는데, 올해 회의를 준비한 양자경제외교국 기본경비 예산안에도 '방위산업협력 공관장 회의'는 보이지 않는다. 세부 항목 가운데 '경제안보현안대응 활동 전개' 예산 7,100만 원이 새롭게 추가됐지만, 이 역시 '방위산업협력 공관장 회의'와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3월 공수처 수사 대상이자 출국금지 상태였던 이 전 대사는 호주대사로 임명됐다. 그는 돌연 출국했고, 4월 총선을 앞두고 여론이 악화하자 국민의힘은 이 전 대사의 귀국을 촉구했다. 이에 외교부·국방부·산업부가 공동 주관하는 '방위산업협력 공관장 회의'를 명분으로 갑자기 귀국했다.
하지만 주요 6개국 대사가 급거 귀국해 참석하는 방산 관련 공관장 회의는 전례가 없어 '급조' 논란에 휩싸였다. 결국 이 전 대사는 '국제 망신'이자 '외교 결례'라는 오명 아래, 부임 25일 만에 자진 사퇴했다. 홍 의원은 "이 전 대사 구조를 위해 쓰지 않아도 될 예산을 집행하고, 심지어 다른 국가의 공관장들까지 동원한 것은 단순히 한 부처의 행정 기능 문제가 아닌, 외교 역량 훼손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