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공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대사...하이너 뮐러의 희곡은 "읽어야" 한다

입력
2024.09.20 11:00
25면
배수아 작가의 [다시 본다, 고전2]
독일 작가 하이너 뮐러의 '희곡선'

편집자주

어쩐지 펼쳐 보기 두려운 고전에 대해 다시 조곤조곤 얘기해 봅니다. 1993년 등단한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배수아 작가와 출판 편집 기획자 출신 강창래 작가가 한국일보에 격주로 글을 씁니다.

오직 감탄하게 되는 언어가 있다. 줄거리에의 몰입, 적당한 정서적 공감, 독서 배경이 뒷받침되는 지적인 이해를 넘어서서 오직 언어 자체에 매혹당하는 체험. 그것이 무엇인지 정체를 잘 알게 되기도 전에, 짧고 순간적일지라도 거의 육체적으로 느껴지는 전율의 체험. 내게 그런 즐거움을 알게 해 준 작가 중 하나는 하이너 뮐러이다.

하이너 뮐러는 희곡작가로 알려졌지만 그가 남긴 산문과 시도 희곡 못지않게 아름답고 인상적이다. 뮐러의 희곡이 정치적인 의미나 미학적인 수준에서 비평가들의 관심을 너무도 많이 차지해버리는 바람에 도리어 그의 시나 산문들이 합당한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보는 평가도 있다. 그의 산문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산문의 개념과는 좀 동떨어진 것이 많다. 길이가 극도로 짧으면서 막간극을 연상시키는 단편들, 영화의 한 장면이나 그림을 독특한 방식으로 묘사하고 서술한 일종의 “그림 쓰기”라고 할 수 있는 그만의 새로운 형식이 있다. 그의 산문은 전체적으로 희곡을 쓰기 위해 준비한 스케치와 같은 인상을 주지만 설사 그 형식이 미완에 가깝다고 해도 뮐러-언어로 들어서기 위한 하나의 미학적 문으로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청중을 베는 교묘하고 잔혹한 대사

내가 처음으로 읽은 뮐러의 작품은 희곡 '사중주'였는데, 그때까지 나는 희곡을 “읽는” 즐거움을 잘 모르고 있었다. 흔히 희곡은 무대에서 공연으로 보아야만 하는 장르라고 알려져 있다. 그것이 맞겠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일까. 연출된 작품으로서의 희곡도 중요하지만 언어 자체에 집중하여 읽는 희곡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사중주'는 드 라클로의 소설 '위험한 관계'를 변형한 2인극이며 남녀의 사랑, 그중에서도 순전히 육체적인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두 배우가 수시로 역할을 바꾸어가며 4인의 대사를 하는데 거의 모든 대사는 섹슈얼리티와 수사가 무기가 되는 언어의 춤이자 결투이다.

뮐러의 작품은 치명적인 파국을 재료로 한다. 그의 대사는 강렬하고 교묘하고 잔혹하다. 그의 언어는 잔혹하게도 피투성이다. 마치 전쟁이나 자연이 인간을 바라본다면 그럴 것만 같은 차가운 눈동자이다. 그의 작품은 거짓과 힘을 다룬다. 남녀의 사랑, 20세기의 전쟁, 파시즘 혹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 그 무엇이건 간에 그들 언어의 역학으로 작용하는 거짓과 힘, 잔혹함과 폭력이 있다. 잠깐, 그렇다면 그건 바로 정치가 아닌가. 사실 뮐러의 작품에서 사회 정치 파시즘이라는 배경은 그의 언어를 더욱 날카롭게 벼리는 모티브이자 도구이다. 그것은 고대극의 비극과 신화, 현재와 미래의 전쟁이라는 악몽의 옷을 입고 등장한다. 독자 혹은 청중들은 그 언어에 베이고 만다. “내 대포는 밥이 필요하다, 여자여. 안 그러면 도대체 여자 몸에 성기가 왜 달려있겠는가.” (희곡 '하트의 왕, 검은 과부' 중)


'해로운 예술가' 취급에도 동독에 남아

뮐러는 1929 독일 작센주의 에펜도르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사회민주주의자 정치가로 나치 치하에서 강제수용소에 수감되기도 했으며 전쟁 후에 독일사회주의통일당(SED·동독의 공산주의 정당)에 가입했으나 당과 갈등을 빚고는 1950년 서독으로 이주했다. 아내와 둘째 아들도 그와 함께 동독을 떠났으나 큰아들인 하이너 뮐러는 동독에 남았다. 그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까지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독을 떠나지 않았던 예술가였다.

젊은 시절부터 문학비평과 희곡을 썼으며 동독에서 희곡 작가이자 무대 감독으로 활동했을 뿐 아니라 시와 산문 에세이, 많은 대담과 인터뷰를 남겼다. 동독에서의 작가 활동이 항상 평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당으로부터 국가에 해로운 예술가로 비판받고 한때는 작품 공연과 작가활동이 금지되기도 했다. 뮐러는 고대극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다수 썼는데, 현실 정치를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것을 피하기 위한 우회였다고 한다. 또한 마찬가지로 작가였던 그의 두 번째 부인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일도 있었다. (뮐러는 한 인터뷰에서 잉에 뮐러가 전쟁 중에 겪었던 커다란 악몽과 마음의 상처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뮐러는 베를린 앙상블과 폴크스뷰네 등의 극작가로 성장할 수 있었고 동독에서 금지된 그의 작품들도 서독과 미국 등 서구권에서 호평을 받으며 공연되었다. 아마도 그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더불어 서구에 가장 많이 알려진 동독 작가에 속할 것이다. 베를린 서가의 주인은 1984년 서베를린에서 만난 뮐러에게 직접 서명을 받은 희곡집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이해하지 못하는 공간서 축제가 시작된다"

희곡은 한 작가의 언어적 감각의 정수를 가장 잘 드러내주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배우의 목소리에 의해 소리내어짐으로, 그리고 무대에서 연출됨으로 비로소 완성된다는 특징과 분리할 수 없는 문학이기도 하다. 그래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번역이란 장치를 거칠 때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장르이기도 하다. 언젠가 나는 뮐러 전공자로부터 한국에서 희곡이 얼마나 읽히는지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나 자신부터가 희곡의 독서 경험이 거의 없음을 고백해야만 했다. 그런데 뮐러의 작품은 초연되기 전에 동독의 연극 잡지에 먼저 발표된 것들이 많았다. 적어도 어느 한때는 “읽는 희곡”이 사회에 존재했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누군가 “왜 하필이면 희곡을 읽어야 하나?”라고 질문한다면 나는 대답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왜 하이너 뮐러를 읽어야 하나?”라는 질문이라면 좀 다르다.

“뮐러의 언어는 (....) 누구나 일단 한 번 들이마시기만 하면, 모공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하이너 뮐러의 주요작품들을 독일 무대에 올렸던 불가리아 출신 연극연출가 디미테어 고트쉐프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또 '독일어 모국어자가 아닌 연출가로서 (심지어 독일인들에게도 난해하기로 유명한) 뮐러의 뛰어남을 어떻게 알아차리고 이해할 수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우리가 뮐러 혹은 그와 같은 작가를 마주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언어를 문법적으로 철두철미하게 이해하는 것은 지루하고 내 스타일도 아니다. 일단 나는 가장 먼저 조각들과 파편들을 집어낸다. 그런 방식을 통해서 내가 뭔가를 포착했다고, 혹은 뭔가가 나를 포착했다고 상상한다. 하이너 뮐러거나 뷔흐너 혹은 횔덜린이라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을 전부 다 이해할 필요는 없다! 읽다 보면 ‘이해하지 못함’이라는 공간이 입을 벌린다. 반짝이면서 떨리고 전율하는 공간과 구멍들이다. 바로 그곳을 통해서 번갯불이 번쩍인다. 연극에서는 아주 중요한 지점이다. 거기서 축제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 공간에 자신을 던져넣고, 마음껏 빠져들 수가 있다.”

뮐러가 쓴 여성 주인공들의 목소리는 인상적이다. 예를 들자면 '황폐한 물가 메데이아 자료 아르고호 사람들이 있는 풍경'의 메데이아, 그리고 '햄릿기계'의 오필리어의 다음과 같은 대사. “내가 받아들였던 모든 정자를 토해낸다 / 내가 낳은 세상을 파기한다 / 굴종의 행복을 타도하라 / 증오, 경멸, 폭동, 죽음 만세.” 메데이아와 오필리어, 많은 희곡작가들을 매혹시킨 파괴적인, 자기파괴적인 여성들이다.

어느 날 저녁 베를린 서가의 주인과 나는, 메데이아의 대사를 서로 낭독해보자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고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이 작품에서 이아손의 대사는 거의 최소한으로 축소되어 극히 짧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번갈아가며 메데이아가 되어 그녀의 대사를 나누어서 읽었다. 어쩌면 연극의 생명은 본 무대가 아닌 리허설에 있을 것이다. 어떤 공간이 입을 벌린다, 그것이 자신을 포착했다고 믿으며, 두 사람 혹은 그 이상의 다수가 자신을 그 안에 이입시키고 서로 낭독하듯이 소리내어 읽기, 그것은 자체로 흥미로운 놀이이면서 영원히 끝나지 않는 리허설과 같았다.




배수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