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치 '전주'까지 유죄... 계좌 활용된 김건희 여사도 사법리스크

입력
2024.09.12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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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항소심]
법원, 1심 무죄 뒤집고 방조 혐의 유죄
시세조종 주범 권오수 1심보다 형 가중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서 '전주'(錢主) 격인 투자자가 시세조종 행위를 방조한 혐의를 인정받아 항소심에서 징역형을 받았다. 주범이 아닌 전주 또한 방조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판결이 나오면서, 이 사건에 계좌가 동원된 김건희 여사의 사법리스크도 커지게 됐다.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 권순형)는 12일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 9명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전주' 손모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주범인 권 전 회장은 1심보다 가중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5억 원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권 전 회장에 대해 "여러 유·무형의 이익을 얻은 것으로 보이고 특히 시세조종 행위로 도이치모터스 초기 안정적 성장 및 확장 과정에서 상당한 이익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고 질책했다.

권 전 회장 등은 2009년 12월부터 3년여간 91명 명의의 157개 계좌를 동원해 2,000원대이던 도이치모터스 주가를 8,000원대까지 끌어올린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권 전 회장이 도이치모터스 우회 상장 후 주가가 하락하자 △주가조작 '선수'(작전 주문을 내는 사람) △투자자문사 △전현직 증권사 임직원 등과 짜고 도이치모터스 주가를 조작한 것으로 봤다. 검찰은 권 전 회장 등이 3년 동안 다섯 차례에 걸쳐 순차적으로 주가를 조작한 것으로 보고 포괄일죄(여러 기간에 일어난 범죄 행위를 하나의 사건으로 보는 것)로 판단해 기소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이모씨가 '주포'(총괄기획자) 역할을 맡은 제1차 시세조종(2010년 10월 20일 이전), '주포'가 김모씨로 바뀌는 제2차 시세조종(2010년 10월 21일 이후)으로 나눠 판단했다. 범죄 의도가 달라졌다고 본 것이다. 그중 1차 범행은 공소시효가 만료돼 면소(공소가 적당하지 않은 경우 직접적 판단 없이 소송을 종결시키는 것) 판결을 내렸고, 2차 범행은 대체로 유죄로 판단했다.

김 여사와 연관된 부분은 '전주' 손모씨에 대한 유죄 판단이다. 손씨는 자신과 배우자 명의 계좌를 이용해 고가매수 등 이상매매 주문을 제출해, 대량매집행위로 시세조종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그를 '공동정범'으로 보아 기소했다가 1심 무죄를 받은 뒤, 주가조작 '방조' 혐의를 예비적 공소사실로 추가했다.

항소심은 손씨를 공동정범으로 볼 수는 없다고 1심과 같이 판단하면서도, 방조 혐의는 일부 유죄로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손씨는 미필적으로나마 시세조종을 알면서도, 대출금 등으로 인위적 매수세를 형성해 다른 피고인들의 시세조종을 용이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주포' 김씨 등 시세조종에 가담한 나머지 공범들은 징역형의 집행유예와 1,000만~4억 원에 달하는 벌금을 선고받았다. 2차 범행을 주도하며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 이종호 블랙펄인베스트 대표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이 대표는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의 구명 로비에 연루됐다는 의심을 받는 인물이다. 주가조작 '선수' 이모씨만 유일하게 1심과 같은 징역 2년의 실형과 벌금 5,000만 원을 받았다. 재판부는 "2차 시세조종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피고인들의 형은 원심보다 무겁게 정했고, 부차적 역할을 한 피고인들은 원심보다 가볍게 정했다"고 설명했다.

이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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