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트럼프, 난타전 토론 이튿날 또 악수… 미국 9·11테러 추모식의 정치학

입력
2024.09.12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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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 다툼 중 ‘보여주기쇼’ 연출
통합 동참 거부하면 정치적 부담
이면 분열 극심… 애국심 쟁탈전

10일(현지시간) 밤 첫 TV 토론에서 난타전을 치른 뒤 악수 없이 헤어진 미국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민주당)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공화당) 전 대통령이 이튿날 아침 다시 만나 악수하는 어색한 장면이 연출됐다. 당파적 균열을 용납하지 않는 국가 차원 비극, 9·11의 힘이다. 다만 카메라용 제스처에 가까워 진정한 화합은 요원했다.

9·11, 미국 국가 비극의 힘

11일 오전 뉴욕 맨해튼 9·11 테러 현장 '그라운드 제로'에서 열린 23주년 추모식에는 전날 펜실베이니아주(州) 필라델피아에서 심야 격론을 벌였던 해리스 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나란히 참석했다. 그라운드 제로는 23년 전 테러리스트 알카에다 조직원이 몰던 항공기 충돌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WTC)가 있던 자리다. 3,000명에 가까운 희생자의 이름이 유족과 동료들에 의해 일일이 호명됐고, 두 사람은 이를 함께 지켜봤다. 둘 사이에는 조 바이든 대통령과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자리했다.

전날에 이어 두 번째 직접 대면인 양당 후보는 정중하게 악수를 나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주선자는 블룸버그 전 시장이다. 그가 해리스 부통령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서 있는 쪽으로 데려갔고, 해리스는 전날 토론 시작 때처럼 트럼프에게 악수를 청했다. 트럼프도 호응했다. 두 경쟁자는 몇 마디를 주고받았으며 미소를 띤 트럼프가 잡지 않은 손으로 친근하게 해리스의 손을 두 번 두드리기도 했다.

2001년 벌어진 9·11 테러는 큰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남긴 미국 역사상 최악의 참사다.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 알카에다 테러범 19명이 납치한 민간 항공기 4대가 WTC 남북 건물과 수도 워싱턴 인근 미국 국방부(펜타곤)에 충돌하고 펜실베이니아주 섕크스빌에 추락하며 총 2,977명이 숨졌다. 거대한 슬픔과 외부 적을 향한 증오는 미국인을 하나로 묶었다. 미국은 알카에다 수장 오사마 빈라덴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탈레반 정권을 축출했다. ‘20년 전쟁’의 시작이었다.

균열된 미국, 봉합도 쉽지 않다

매년 이날 미국에서는 정쟁이 일절 허용되지 않는다. 통합 제스처는 불문율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뉴욕에 이어 방문한 섕크스빌 소방대에서 트럼프 지지자가 건넨 빨간색 ‘트럼프 2024’ 야구모자를 잠시 썼다 벗은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NYT는 “통합의 장면(해리스와 트럼프의 악수)은 카메라용 시늉”이라며 “쇼를 하지 않는 자는 누구든 정치적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양측 모두 알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현재 미국의 정치 현실은 정반대다. 어느 때보다 당파적 분열이 극심한 시기라는 게 미국 워싱턴포스트(WP)의 진단이다. WP에 따르면 11월 대선까지 두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양측 간 대립각이 가장 첨예한 싸움 중 하나가 애국심 쟁탈전이다.

7월 구원 등판 뒤 해리스 부통령은 ‘자유 수호 투사’이자 ‘통합 대통령’으로 자신을 규정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정치 무대 등장 이후 근 10년간 전유물로 여겨 오던 애국 가치를 빼앗아 오려 애쓰고 있다. 중도층은 물론 ‘반(反)트럼프’ 보수 유권자도 표적이다.

그러자 트럼프 측이 반격 카드로 제시한 게 바이든 행정부 첫해(2021년) 아프간 철군 비난이다. 아프간 카불공항 테러로 미군 13명을 잃은 굴욕적 철수 과정을 부각하며 해리스 부통령에게 책임을 추궁하겠다는 게 공화당 측 심산이다. 해리스의 애국심은 가짜라는 것이다. 규정 위반 논란을 빚었던 지난달 트럼프 전 대통령의 카불공항 테러 3년 계기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묘지 참배도 해당 시도의 일환이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