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땅으로 900억 원 챙기기… 대담한 일본 부동산 사기꾼들

입력
2024.09.14 11:00
12면
넷플릭스 드라마 '도쿄 사기꾼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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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부동산으로 돈을 버는 방법이 있다. 중개사는 아니다. 부동산 주인인 척 행세해 계약을 한 후 입금이 되면 사라진다. 주인이 버젓이 있는데 가능한 사기일까. 한국에서는 흔치 않으나 일본에서는 종종 발생하는 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혼란기를 틈타 횡행했고, 1980년대 버블 경제 시기에 기승을 부렸다. 2010년대 도쿄올림픽 확정에 따른 부동산 경기 활성화 기대에 따라 사기 행각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남의 부동산을 속여 팔고 한몫 챙기는 이들을 가리키는 '지면사'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일본에서 꽤 보편적인 범죄다.

①감쪽같은 속임수로 수십억 원을 벌다

다쿠미(아야노 고)는 지면사다. 리더 해리슨(도요카와 에쓰시)의 지시를 받아 팀원과 '작전'을 꾸민다.

일단 다케시타(기타무라 가즈키)가 돈이 될 만한 부동산을 물색한다. 법무사 고토(피에르 다키)가 해당 부동산을 욕심낼 만한 개인이나 기업에 정보를 흘린다. 레이코(고이케 에이코)는 주인 행세를 할, 돈이 절실한 사람을 '캐스팅'한다. 다쿠미는 일의 진척을 살피고,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사 노릇을 한다. 신분증과 각종 서류를 위조하는 전문가를 따로 두고 있기도 하다. 노련한 해리슨의 지휘 아래 팀원들은 각자 특기를 발휘해 수억 엔을 벌어들이고, 정해진 몫에 따라 분배한다.

②일확천금 욕망이 만들어낸 범죄

해리슨 일당은 사람들의 욕망에서 약점을 찾는다. 예를 들어 이런 식. 한 부동산 회사는 도쿄 중심가에서 주택 사업을 하고 싶다. 마음에 드는 부지가 있으나 주인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 해리슨 일당이 중개에 나선다. 집주인은 요양원에 가 있고, 혈육은 딱히 없다. 부지를 사고 싶어 안달이 난 부동산 회사는 가짜 주인이 나타나도 구분을 못한다. 거래를 그르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모든 걸 믿고 싶어한다. 해리슨 일당이 값이라도 슬쩍 올리면 몸이 더 단다.

해리슨은 기이한 인물이다. 그는 돈보다 쾌락을 위해 범죄 행각을 벌인다. 대형 부동산 회사를 상대로 100억 엔(약 900억 원) 상당의 사기 계획을 세운다. 큰 사냥감을 위험을 무릅쓰고 잡았을 때의 쾌감을 느끼고 싶어서다.

③주도면밀 범죄가 주는 긴장감

드라마는 100억 엔짜리 사기에 집중한다. 해리슨이 속여서 팔려는 부동산은 도쿄 중심지 사찰과 절에 딸린 땅이다. 해리슨 일당이 사찰 주지 스님의 기행을 악용해 범죄 계획을 하나하나 진척시키는 장면이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오래전부터 해리슨을 추적해 온 노장 형사(릴리 프랭키)의 집요한 수사가 더해지며 긴장의 밀도가 높아진다. 지면사 때문에 가족을 잃은 다쿠미의 과거가 포개지고, 해리슨의 잔혹한 행태가 겹치면서 드라마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뷰+포인트
지난 4월 국내에서도 출간된 작가 신조 고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지면사의 사기는 한국에 비해 행정 서류 디지털화가 더딘 일본이라면 더 일어날 만한 범죄다. 해리슨은 위스키를 즐기고 신사처럼 행동하나 범죄로 쾌감을 느끼는 변태적 악당이다. 몸서리처질 인물이기는 해도 눈길을 잡는 마력을 지녔다.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는 침실 장면, 지나친 폭력성에 눈살이 조금 찌푸려지기는 한다. ‘오션스일레븐’(2001)이나 ‘도둑들’(2012) 같은 강탈 범죄극의 형식을 띤다. 호스트바 문화 등 일본사회의 이면을 담은 점이 흥미롭기도 하다.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 평론가 100%, 시청자 90% ***한국일보 권장 지수: ★★★★(★ 5개 만점, ☆ 반 개)


라제기 영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