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좌절된 ‘전 국민 25만 원 지원법’을 이달 말 재표결하겠다는 더불어민주당 입장에 변화의 조짐이 감지된다. 민주당 차기 대선 주자 중 한 명인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선별 지급을 주장하자, 며칠 후 이재명 대표의 멘토 이한주 민주연구원장이 “전체를 다 주는 게 불편하게 생각된다면 선별 지원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표 역시 한동훈 여당 대표 회담에서 “여당이 선별·차등 지원하겠다면 수용하겠다”고 했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선별이든 보편이든 ‘현금 살포’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이 지역사랑상품권 사용액 소득공제율을 기존 30%에서 80%로 높이는 법안을 단독 추진하자, 정부와 여당이 일제히 반대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상품권이 ‘25만 원 지원법’ 지급 수단이란 점을 지적하며 “현금 살포를 상설화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정부도 추석 내수 활성화 방안으로 전통시장 지출 소득공제율을 80%로 2배 상향하기로 했다.
□소득공제나 상품권 지원이나 소비자 여윳돈이 늘어난다는 점에서 효과는 동일하다. 그래도 상품권 지원만 반대하는 것은 ‘현금 복지’에 대한 뿌리 깊은 거부감과 무관하지 않다. 1980년대 영미 신자유주의자들은 빈곤 가정 자녀를 위해 현금을 지원하는 복지 제도를 공격하기 위해 ‘복지 여왕’이란 프레임을 만들었다. “가명과 허위 주소로 부당 지원금을 받아 호의호식하는 미혼모가 많다”는 주장이다. 이 프레임은 복지 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당시 한국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최근 미 경제통신 블룸버그는 ‘현금 복지가 효율적’이란 칼럼을 게재했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2021년 하반기 자녀 있는 가족에게 보편적으로 현금을 지원했더니 아동 빈곤율이 46%나 감소했다. 이후 미 전역에서 30여 개의 유사 복지 실험이 진행 중이며 긍정적 효과가 나타난다. ‘복지 여왕’ 원조국도 변화하는데, 우리나라는 해묵은 ‘현금 복지 거부감’에 발이 묶여 있다. 그사이 가계 여윳돈은 8분기 연속 감소 중이고, 하위 20%의 복지 의존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