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관저 이전 과정 위법투성이...김건희 여사 관여 여부는 규명 못 해

입력
2024.09.1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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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업체 계약 과정서 '국가계약법' 위반 적발
미등록 하청업체도 시공...관리감독 소홀 '주의'
방탄창호 16억 공사비 편취...경호처 간부 개입

윤석열 정부가 대통령실과 관저를 용산으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비적격 하도급 업체를 공사에 참여시키는 등 다수의 위법 행위가 감사원 감사로 드러났다. 방탄창호 공사 과정에선 브로커가 개입하면서 16억 원가량의 국고가 손실됐다. 김건희 여사와 인연이 있는 업체가 한남동 관저 공사를 맡는 과정에서 특혜가 제공됐다는 의혹은 규명되지 않았다. 2022년 12월 감사 착수 이후 1년 8개월 만에 내려진 결론이다.

감사원은 12일 이 같은 내용의 '대통령실·관저의 이전과 비용 사용 등에 있어 불법 의혹 관련' 감사 보고서를 공개했다. 감사원은 △집무실 이전공사 △관저 보수공사 △방탄창호 설치공사 △경호청사 등 이전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법규 위반과 관리·감독 소홀 문제를 다수 적발하고, 대통령실과 행정안전부 등에 '통보'와 '주의' 처분을 내렸다.

예산과 일정 이유로... 계약 전 일단 공사부터

감사원에 따르면, 대통령 비서실은 예산이 모두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단 공사에 착수, 예산을 추후 확보하는 방식으로 관저 보수공사를 추진했다. 그 결과 '국가계약법'과 '건설산업기본법' 등 관련 법령이 지켜지지 않은 사례가 다수 발생했다는 게 감사원 판단이다. 국가기관이 민간 업체와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따라야 할 절차와 순서, 형식이 법에 규정돼 있는데, 대통령실은 예산 부족과 시급한 공사 일정을 이유로 이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공사업을 등록하지 않은 하청 업체가 공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시공업체가 15개 업체에 무단으로 하도급을 줬지만 비서실은 이를 바로잡지 않았다. 또한 공사비 정산 업무 소홀로 업체로 3억2,000만 원이 과다 지급한 사실도 확인됐다. 업무를 담당했던 직원은 감사원에서 "본인의 불찰"이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감사원은 "당시 준공일정이 촉박했더라도 주요 국가시설에 대한 공사 참여 업체의 자격 검토가 철저히 이뤄질 필요가 있었다"며 "비서실은 관저 보수공사의 공사 감독 업무를 소홀히 했다"고 지적했다.

방탄창호 시공 과정에서는 16억 원 상당 국고 손실이 발생했다. 실제 1억3,000만 원 정도인 방탄창호를 17억 가량에 납품하는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감사원은 경호처 간부 A씨가 시공을 지인 업체에 맡기는 혜택을 제공한 정황을 확인하고 파면을 요구했다. 앞서 지난해 10월에는 검찰에 수사를 요청, 현재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가 진행 중이다. 공사 사업책임자였던 A씨가 10년 이상 친분을 쌓은 사업 브로커를 업체 선정과 현장관리 업무를 총괄하는 관리자로 선정하면서 필요 이상의 고가계약이 체결됐다는 게 감사원 판단이다. A씨는 경호처 공채 한 기수 선배가 소유한 땅을 공사 참여 업체 대표에게 시세(3,000만 원)보다 비싼 7,000만 원에 강매하고, 알선 대가로 빚 160만 원을 탕감 받기도 했다.

시공업체 수의계약, 직권남용... "문제없다"

감사원은 다만 시공업체를 수의계약으로 선정한 데는 문제가 없다고 봤다. 보고서에 따르면 집무실, 관저 이전과 관련한 행정안전부, 경호처, 비서실이 발주한 모든 공사의 시공업체 선정은 수의 계약으로 이뤄졌다. 그중 관저 리모델링 공사를 맡은 곳은 김 여사가 대표로 있던 코바나컨텐츠의 전시 후원사로 이름을 올렸던 회사라 특혜 의혹이 불거졌다. 감사원은 그러나 "법령상 수의계약 체결이 가능하다"며 "계약 업체가 기본적인 공사업을 등록한 점을 고려할 때 수의계약 자체가 위법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감사원은 집무실과 관저 이전 의사결정 과정에도 직권남용 등 위법은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인수위 시절 대선 공약과 함께 2022년 3월 용산의 국방부 신청사를 대통령 집무실로, 4월 외교부 장관 공관을 대통령 관저로 삼기로 발표했다. 국무회의에서 이전 관련 예비비가 의결됐고, 국방부가 인수위 요청사항을 검토해 국회에서도 보고하는 등 국방부 의견이 묵살된 정황은 없다는 게 감사원 판단이다.

이번 감사는 2022년 10월 참여연대가 국민감사를 청구하며 시작됐다. 감사원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직권남용 등 부패행위나 불법이 있었는지'와 '공사 계약 체결 과정에서 불법 행위와 특혜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만 감사를 진행하기로 같은 해 12월 결정했다. 현행법상 국민감사는 감사 실시 결정 이후 60일 이내 마치는 게 원칙이지만, 감사원은 7차례 연장하며 1년 8개월이 걸렸다.



이혜미 기자
김형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