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州) 필라델피아의 국립헌법센터. 90분간으로 예정된 민주·공화 양당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간 첫 TV 토론 대결이 오후 9시 막을 올렸다.
기선을 제압한 사람은 해리스였다. 검은색 정장 차림의 해리스는 무대에서 성큼 걸어가 트럼프에게 “카멀라 해리스”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악수를 청했다. 미국 대선 TV 토론 때 양당 후보가 악수한 것은 2016년 이후 처음이라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또 두 사람이 실제 마주한 것도 이날이 처음이었다.
해리스는 대선 후보 토론이 처음이지만 세 번째 대선을 치르는 트럼프의 기세에 눌리는 기색이 아니었다. 트럼프가 말할 때는 미소를 머금은 채 그를 지켜봤고, 트럼프 발언 내용이 상식과 어긋난다 싶으면 과장되게 폭소를 터뜨렸다.
가령 이민자가 이웃의 개와 고양이를 잡아먹는다는 트럼프 언급 때 그랬다. 트럼프는 오하이오주 스프링필드 등 특정 지역을 지목하며 “이민자들이 거기 사는 주민들의 반려동물인 개와 고양이를 잡아먹는다. 이게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해리스는 “뭐라고(What?)”라고 반문하며 고개를 저었다. 트럼프 발언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려는 의도된 행동이었다. 해리스는 또 자신의 공약을 얘기할 때는 유권자에게 직접 말하듯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기도 했다.
반면 항상 입던 푸른색 계열 양복에 붉은색 넥타이를 맨 트럼프는 신경질 내는 모습이 자주 노출됐다. 토론 중반 해리스가 마이크가 꺼진 상태에서 말을 끊고 반박하려 하자 “내가 지금 말하는 중”이라며 “이 말이 익숙하냐”고 비아냥댔다. 해당 발언은 2020년 대선 당시 부통령 후보였던 해리스가 공화당 부통령 후보였던 마이크 펜스와의 토론 때 쏘아붙였던 것이다.
트럼프는 할 말이 많았다. 러시아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관련해 장황하게 설명하다 사회자에게 발언을 제지당하기도 했다.
미국 CNN방송이 주관했던 6월 토론 때와 달리 이날 토론을 주관한 미 ABC방송 측 진행자 데이비드 뮤어와 린지 데이비스는 적극적으로 ‘팩트체크(사실관계 확인)’ 개입을 했다. 트럼프가 민주당이 신생아를 처형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하자 진행자인 뮤어가 발언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며 곧바로 정정하는 식이었다.
이날 토론은 예정 시간을 넘겨 100분가량 진행됐다. 토론이 끝났을 때 두 사람은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백악관 공동취재단에 따르면 해리스는 밤 11시 10분쯤 함께 모여 토론을 시청하던 지지자들을 만났다. 스피커에서는 그가 유세 등장곡으로 쓰고 있는 ‘프리덤(자유)’의 가수 비욘세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해리스는 “오늘은 좋은 날이었다”고 자평하면서도 “우리는 (선거 당일까지) 56일이 남아 있고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20분쯤 뒤 행사장을 떠날 때는 이날 토론 직후 자신을 지지한 유명 팝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트럼프는 토론 뒤 사회관계망서비스 트루스소셜에 “내 역대 최고의 토론이었다. 3대 1의 대결이었기 때문”이라고 썼다. 사회자가 편파적이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