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권익 단체인 '인천·부천 민주노동자회'(인노회)에 씌워진 누명으로 인해 덩달아 유죄 선고를 받은 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활동가에게 사망 34년 만에 뒤늦은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조형우)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1989년 유죄를 선고받은 고 최동씨에게 5일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최씨가 이적단체에 가입했다거나 그가 소지한 책자가 이적표현물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최씨는 1988년 5월 인노회에 가입했다가 이적단체 활동 혐의로 체포돼 이듬해 재판에 넘겨졌다. 그가 자취방에 보관하고 있던 책 '볼셰비키와 러시아혁명2' 역시 북한에 동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소지한 이적표현물로 취급됐다.
1심은 최씨 혐의를 모두 유죄로 보고 징역 1년 6개월, 자격정지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판결은 항소심이 열리지 않은 채 그대로 확정됐으나, 실어증과 조현병 증세 등 고문 후유증을 보이며 정신병원을 전전하던 최씨는 1990년 8월 한양대 강의실에서 분신해 생을 마감했다.
명예회복의 물꼬는 2017년 또 다른 인노회 회원의 재심에서 트였다. 당시 재판부가 "인노회 활동은 노동법 개정 등 노동자들의 권익향상 및 5공 비리 척결 등을 위한 것으로, 반국가단체와 연계한 정황은 찾아볼 수 없다"며 기존 판례를 뒤집고 인노회는 이적단체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에서 2020년 확정된 그 재심 사건을 토대로 최씨 사건을 심리한 이번 재판부도 "인노회 활동이 그 자체로 국가의 존립∙안전에 해악을 끼칠 만한 위험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가 지닌 책은 위법한 체포과정에서 강제 압수돼 증거능력 자체가 없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