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석 검찰총장이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 사건을 임기 내에 처리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후임 총장에게 공을 넘기게 됐다. 검찰은 김 여사에게 가방을 준 최재영 목사 사건에 대한 외부 전문가 판단까지 받아본 후, 두 사람 사건을 한꺼번에 처리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검은 11일 "최 목사의 청탁금지법 위반, 주거침입, 위계공무집행방해, 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검찰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 절차가 진행 중인 점 등을 고려해 관련 사건에 대한 처리 시기를 추후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관련 사건'이란 최 목사에게서 선물을 받은 김 여사 사건을 가리킨다. 결국 최 목사 사건에 대한 수심위 결론을 지켜본 후 김 여사 처분 방향까지 함께 결정하겠다는 취지다.
이 총장이 이렇게 결정한 건 금품 공여자(최 목사)에 대한 수심위 결론이 나오기 전에 금품 수수자(김 여사)를 불기소 처분할 경우 공정성 시비가 불거질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양쪽 수심위 결론이 다를 경우 수사팀이 난처해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애초 김 여사 사건은 이번 주 중에 불기소 처분으로 마무리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했다. 이 총장이 지난달 23일 직권 소집한 수심위는 이달 6일 김 여사의 청탁금지법 위반 등 6개 혐의에 대한 기소 여부를 검토한 뒤, 만장일치로 모든 혐의에 대한 불기소 의견을 의결·권고했다. 수사팀 결론과 같은 수심위 권고를 받은 이 총장은 9일 출근길에 "수심위 결정을 존중한다"며 '김 여사 무혐의 처분'을 사실상 기정사실화했다. 임기 내 이 사건을 종결하겠다는 의지를 누차 드러냈던 이 총장 시간표상 무리가 없어 보였다.
이런 전망은 '최 목사 수심위' 개최에 발목을 잡혔다. 서울중앙지검 검찰시민위원회는 9일 최 목사 사건에 대한 수심위 개최 여부를 두고 부의심의위원회를 열어 별도 수심위 소집 결정을 내렸다. 이 총장은 "내부 검토를 충분히 거치겠다"며 결정을 유보했고, 전날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김승호) 수사팀이 김 여사 불기소 처분 의견을 담은 보고서를 대검찰청에 보고했다.
이 총장의 의견 조회 요청을 받은 대검 참모들은 '최재영 수심위' 이전에 김 여사 건을 처리할 것인지, 후에 처분할 것인지를 두고 다양한 의견을 냈다. 결국 이 총장은 고심 끝에 최 목사 사건과 함께 처리하라고 전날 오후 늦게 대검 참모를 통해 수사팀에 사실상 '통보'했다고 한다. 이 총장은 수사팀이 7월 김 여사를 제3의 장소에서 비공개 '출장조사'했다는 논란이 한 차례 불거졌던 상황에서 최 목사 수심위 결과보다 김 여사 사건만 먼저 처분하는 건 재차 논란을 낳고 최종 처분에 대한 신뢰를 얻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김 여사 사건 처분은 심우정 차기 총장 후보자의 손으로 넘어갔다. 최 목사 수심위는 추석 연휴를 넘겨 이달 24일 열릴 계획이다. 이에 따라 김 여사 사건 처분은 아무리 서둘러도 이달 말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후임 총장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하며 임기 내 김 여사 사건 처분을 강조해 온 이 총장으로선 약속을 지키지 못한 셈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