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 해결의 키를 쥐고 있는 대통령실의 관망이 길어지고 있다. 여야의정 협의체(협의체)를 제안한 여당의 분주한 움직임과 대조적이다. 일찍이 '재고 불가 방침'을 못 박은 '2025학년도 의대 정원 조정' 등 민감한 쟁점의 논의 가능성이 시사되는 상황에서도 말을 아끼는 모습이다. 의료대란의 고비가 될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일단 의료계까지 합류한 대화 테이블이 열리는 게 최우선이라는 데 대통령실도 공감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두드러지진 않지만, 지난 주말 이후 대통령실의 흐름에서는 변화가 감지된다. 분명하게 선을 그은 2025년 의대 증원 백지화나 보건복지부 장차관 경질 등에 대한 결이 다른 여당의 목소리에도 유연하게 대응하고 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11일 한국일보 통화에서 "(한동훈 대표가) 의료계의 협상 테이블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표현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지난 7일 '정부가 2026학년도 의대 증원 유예를 결정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정부는 즉각 설명자료를 내고 "사실과 다르다"며 "과학적 분석에 터 잡은 의료인 수요 추계를 제시해야 재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고 선을 그은 것과 사뭇 다른 양상이다.
대통령실의 이런 분위기는 통일된 협상 창구가 없는 의료계의 현실을 감안할 때, 의정갈등의 물꼬를 트기 위해서는 협의체 가동이 최우선이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 여권 관계자는 "몇 번이고 확인한 대통령실의 가이드라인을 쉽게 바꾸기야 하겠느냐"면서 "지금 상황에서는 일단 대화를 시작하는 자체에 중요한 의미를 둘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국 민심의 변곡점이 될 추석 연휴를 앞두고 있다는 점도 대통령실이 무시할 수 없는 변수로 꼽힌다. 정부는 의료대란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 의료 수요를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자칫 윤석열 정부 책임론이 확산될 가능성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실도 물밑에서는 현장 상황을 시시각각 체크하면서 협의체 가동 이후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지난 5일부터 전날까지 17개 시도의 34개 병원에 8개 수석실 소속 비서관과 행정관을 파견해 현장 건의사항을 청취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대학병원들은 전공의 이탈로 응급 역량이 축소돼, 중증 중심으로 진료 중"이라면서 "하지만 의료진의 피로도가 높고, 추가적인 사직과 인력난 등을 호소했다"고 전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배후 진료와 저수가, 환자의 대형·수도권 병원 쏠림, 민형사상 책임을 우려한 의료진의 환자 인수 기피 문제 등은 (전공의) 집단 행동 이전부터 누적된 문제다"며 "이번 기회에 치유하자는 의견이 있었다"고 의료개혁 필요성도 강조했다. 이번에 취합한 의견을 토대로 대통령실은 향후 △의료인 민형사상 면책 강화 △필수 의료 수가 정상화 △응급실 수술에 대한 개원의 활용 △건강보험 선지급금 상환 유예 등을 보건복지부 등 관계부처와 검토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