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사람을 걱정하는 문학의 안간힘"...진은영 시인이 문학을 읽는 이유

입력
2024.09.1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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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 산문집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
한국일보 '다시 본다, 고전' 연재 엮어

시인에게 문학을 읽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진은영 시인의 에세이집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에는 세상과 불화를 겪으며 문학에 의지해 인간애를 회복해온 시인의 시간이 담겨 있다. 진 시인이 2021년 6월부터 올해 2월까지 '다시 본다, 고전'이란 이름으로 한국일보에 연재한 문학 서평을 엮었다.

진 시인은 "작가들은 진심으로 독자를 믿는다. 그들에게 그런 믿음이 없다면 어떤 슬픔 속에서도 삶을 중단하지 않는 화자, 자기와 꼭 들어맞지 않는 세계 속에 자기의 고유한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부단히 싸우는 주인공을 등장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책머리에 썼다. 문학 속 주인공을 벗해 희망을 찾고자 한 시인의 절실함, 그것을 알아보는 용감한 독자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던 간절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진 시인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백석, 존 버거, 알베르 카뮈, 시몬 베유 등 전력으로 글을 쓴 작가들의 작품 안으로 성큼 들어가 '지금, 여기'를 말한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을 읽으며 여성의 글쓰기를 허락하지 않은 시대에 작가이자 피고로 살아야 했던 브론테 자매를 주목하고, 소수자성이 드러나는 순간 일상을 억압받는 한국 사회의 소수자들로 시선을 옮긴다.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를 읽으면서는 400년간 남성으로도 여성으로도 외교관으로도 살다가 결국 시인이 되는 올랜도를 통해 모두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사는 사회를 기원한다. 진 시인이 "한없이 다정하고, 비명이 나올 만큼 끔찍하다"고 묘사한 문장들은 현실 세계의 고통을 직시하게 하고, 실패란 결코 어리석은 게 아니라고 말한다. 시인에게 문학은 결코 쉬운 위로가 아니다. 고통과 슬픔 속에 남겨진 사람을 지키려는 안간힘 그 자체다.


손효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