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의대생 집단행동에 참여하지 않은 이들의 실명과 신상정보를 악의적으로 공개하고 있는 '블랙리스트'에 응급실에서 일하는 전공의·군의관 명단이 대거 추가된 가운데, 경찰이 명단 제작·유포자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다.
10일 경찰에 따르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최근 아카이브(정보기록소) 형태의 인터넷 사이트에 집단행동에 참여하지 않은 이들의 실명과 신상정보가 유포된 것과 관련 피의자 A씨 신상을 특정하고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및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두 차례에 걸쳐 A씨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하는 등 혐의 입증에 나선 상황이다. 경찰은 아카이브 접속 링크를 유포한 3명의 신상도 추가로 파악해 스토킹처벌법 위반 방조 혐의로 입건했다.
'감사한 의사'라는 반어적 제목이 달린 이 사이트는 매주 토요일마다 명단이 업데이트되는데, 일반인도 주소를 알면 열람할 수 있다. 앞서 경찰은 보건복지부의 수사 의뢰를 받아 아카이브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문제는 명단이 계속 확장되는 데 있다. 지난 7일에는 아카이브에 '응급실 부역'이라는 제목의 항목이 추가돼 논란이 일었다. '빅5'(5대 상급종합병원)를 포함한 187개 수련병원 응급실에 근무하는 전문의·전공의 인원 집계치와 함께 일부 병원 근무자의 실명을 'OOO 선생님 감사합니다'라는 비꼬는 표현과 함께 공개한 것이다. 응급실 전담의 부족 위기 상황 속에서 현장에 남은 동료를 조롱할 목적으로 명단을 유포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수본 관계자는 "블랙리스트가 시시각각 업데이트되며 확장되고 있다"며 "최근엔 응급실 근무 의사 실명을 공개한 자료까지 업데이트돼 관련자들을 추적 중에 있다"고 말했다.
블랙리스트는 지난 2월 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에 반발해 전공의·의대생이 수련병원과 강의실을 집단 이탈한 직후부터 작성됐다. 단순한 실명 공개를 넘어 개인 연락처, 출신 학교, 연인 관계 등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신상 정보도 게시된다. 처음에는 수련병원 집단사직에 불참했거나 복귀한 전공의를 겨냥했다가 이후 하반기 수련생 모집에 지원하거나 촉탁의 계약을 맺고 수련병원에 돌아간 사직 전공의도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경찰은 이날 기준 블랙리스트 공개 및 모욕·협박 등 조리돌림 관련 총 42건을 수사해 용의자 48명을 특정하고 이중 32명을 송치했다. 우종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의료 현장에서 성실히 근무하는 의사들의 명단을 공개하는 행위는 엄연한 범죄"라며 "중한 행위자에 대해선 구속 수사를 추진하는 등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신속·엄정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